제왕업 - 상 - 아름답고 사나운 칼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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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멜로극이란 소개에 혹해서 선택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은 멜로나 무협보다 권력 쟁투를 위한 냉혹하고 비정한 길을 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황권이 약해지고, 변방이 돌궐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권문세가는 호방한 기세를 잃어가고, 미천한 가문의 인물들은 처절한 생존 경쟁을 통해 자신들의 자리를 만든다. 하지만 권력은 단순히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훨씬 비정하고 참혹하다.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잠시라도 방심하거나 독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언제라도 적에게 당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왕현이란 한 여성의 시각에서 이런 권력 쟁투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1천백 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상당히 가독성이 좋다.

 

냥야 왕가의 금지옥엽인 왕현은 어린 시절부터 궁궐을 내 집처럼 드나든다. 황제와 황후의 사랑을 듬북 받으며 자란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황자 자담과 연인으로 자란다. 하지만 황제란 자리는 하나고, 이 자리를 두고 황제와 황후의 생각이 다르다. 황자들의 모후들 가문들도 이 자리를 두고 다툰다. 황후는 왕씨 출신이다. 당연히 왕씨는 태자인 황후의 아들을 민다. 열다섯이 된 왕현은 자담과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변방을 돌면서 연전연승한 소기 장군과 정략결혼하게 된다. 결혼식 당일 신랑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떠난다. 상심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소기의 적에게 납치된다.

 

납치된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강단 있는 여성인지 잘 드러난다. 처음 신랑 소기를 만난 것도 죽음의 위기 앞에서다. 3년 독수공방이 한 번이 풀릴 리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소기와 사랑에 빠진다. 현실 인식과 함께 그녀 속에 숨겨져 있던 비정한 철혈의 욕망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왜 자신이 정략결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고, 첫사랑의 상대가 아닌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대상으로 이용될 수밖에 현실을 알게 된다. 어린 소녀인 그녀에게 이런 환경은 너무 가혹하지만 현실은 끊임없는 암투의 연속이다.

 

황권이 무너지면 그 권력을 잡기 위한 수많은 세력들이 움직인다. 서로의 이해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진다. 군권을 지고 있고, 전투의 능한 소기를 정면에서 이길 적은 없다. 왕현이 황성으로 돌아온 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권력을 위해서 각 집안과 개인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인내하며, 반격하려는지 잘 보여준다. 이 과정을 보면서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밖으로 평온한 듯한 집안도 살짝 이면을 들여다보면 시기와 질투가 넘쳐난다. 친척도, 친구도, 충신도 시간의 흐름과 권력의 욕망 앞에서는 너무 쉽게 무너진다. 이 끊임없는 암투와 음모와 배신 속에서 왕현은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다. 비정한 철혈의 길이다.

 

이 소설 속에 드러나는 비정한 현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분명해진다. 자신이 귀여워했던 아이들을 내쳐야 하는 현실과 황자의 신분이지만 유폐된 자담과의 추억은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괴롭힌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을 결코 피하지 않는다. 바깥의 적은 남편 소기가 막아낸다면 내부의 적은 그녀가 처리한다. 순진하고 연약한 듯한 여자들조차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숨겨둔 한 수가 있다. 궁궐의 비밀은 담을 넘지 않아야 하고, 내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해서는 고문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도 이 부부의 사랑은 굳건하다. 제왕의 패업을 이루는데 최근의 결합이다. 본편이 끝난 후 후기는 또 다른 여운과 재미를 준다. 중국 드라마에서 장쯔이가 왕현 역할을 할 듯한데 소설 속 나이와 실제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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