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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시선 - 연대보다 강력한 느슨한 연결의 힘
김민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0월
평점 :
김민섭이란 이름은 낯설지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낯익다.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잘 알고 있다. 대학원생, 시간강사의 삶, 대학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평가를 받은 책이다. 대학이란 괴물이 어떻게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피를 빠는지 조금은 알기에 내용을 대충 짐작했지만, 그 대충 짐작과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시간이 나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후 나온 <대리사회>도 눈팅만하다 시기를 놓쳤다. 요즘 이런 사회과학 서적들이 솔직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처럼 소설이나 에세이 이외의 책들은 읽지 않아 독서량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쓴 글을 모았다. 크게 대학, 청년, 사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학을 다룬 부분은 저자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엮이고 꼬이면서 아주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을과 을의 싸움이란 부분은 현대 사회의 갑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조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들의 정체성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대학 교수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로 듣고 봐서 알지만 그들이 외친 정의 속에 조교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신랄하다. 흔히 말하는 갑질을 넘어선 ‘괴물’이 된 교수까지 있다.
법은 언제나 가진 자들의 편이다. 대학이 기업화된 지 오래고, 선배들은 언제나 추억팔이를 한다. 대학이 정의롭지 못한 것은 그들이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모두 정의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이 대기업이나 종교단체의 사학재단인 것을 감안하면 그들의 이익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조교와 시간강사들의 처우에 함구하는 것도 그들이 지켜야할 자리를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많은 교수들이나 선배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말하며 지금 학생들을 질타하지만 그들은 바뀐 시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 애들이란’ 표현이 난무한다.
웹툰에 대한 저자의 기억 중 일부는 나와 닿아있다. 이제는 웹툰을 거의 보지 않지만 한때 나 자신도 성게군의 팬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나 자신과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공감하고 그 세대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몇몇 장르 웹툰을 빼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완전히 아재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의 말들이 길어지고 있음을 깨닫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조직의 논리에 동화된 괴물이란 표현에 흠칫하는 것은 떠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더치페이와 꼰대가 되어달라는 말에서 이것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성향이 문제란 사실을 확인한다. 비율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글을 삶이라고 표현한 것에 동의한다. <검사내전>에 대한 평이 나오는데 요즘처럼 검사에 대한 불신이 높은 시점에도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검사의 자랑이 아니라 고백이라고 하니 예전에 읽었던 검사의 책과는 다른 모양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월드컵 경험에 대한 글이다. 2002년의 경험은 사실 너무 강렬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때의 광장을 2016년의 광장과 연결시킨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다. 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행진을 ‘산책’이라고 표현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 한 번 흠칫했다. 과거에 머문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과 구호만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히 보였다.”란 문장을 보았을 때 왜 많은 사회운동이 확장성을 가지지 못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증오사회란 표현이 요즘 많이 보인다. 나는 분노한 것 같은데 말이다. 대리기사를 하면서 경험한 것을 풀어낸 이야기에서 갑을을 넘어선 ‘나이’가 부각될 때 한국의 뒤틀린 위계질서가 떠올랐다. 생활고에 최영미 시인이 시달린다는 사실에 현재 문학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오인이 부끄러웠다.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글은 작가가 아닌 편집자의 몫을 많이 내세웠다. 흔히 외국 유명 작가들이 훌륭한 편집자를 만나 명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사회과학 서적을 쓴 저자에게 듣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부제인 ‘연대보다 강력한 느슨한 연결의 힘’에 관심을 두었는데 결국 연대로 돌아온 부분을 보니 연대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