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아주 따듯한 떨림
김인숙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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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시인과 소설가의 산문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여행 작가의 여행기는 자주 봤지만 소설가의 여행기는 사실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사실 이 산문집 이전에 출간된 북경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국의 뒷길을 걷다>에 관심이 많이 뒀다. 하지만 읽을 타이밍을 놓치면서 그냥 묵혀두고만 있다. 아마 내가 여행기에서 바라는 것 중 하나가 혹시 간다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 여행기가 결코 정보 전달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어 이전 책에 관심이 부쩍 되살아났다. 언제나처럼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사오싱이란 중국 발음보다 소흥이란 한자 독음이 더 익숙하다. 아마 중국 지명 대부분을 무협이나 중국 역사소설에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오싱은 일만 개의 다리가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아마 어딘가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때 여행 방송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지금도 관심 있는 지역이 나오면 채널 고정할 정도다. 사오싱이란 이름보다 소흥이란 이름으로 불리면 그 유명하다는 소흥주가 떠오른다. 중국의 명주로 이름 놓은 술이다. 이 책을 보면 소흥주의 종류도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술을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몇 잔이나 마실 수 있을지 괜한 걱정을 해본다.

 

몰랐던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하나는 루쉰이고, 다른 하나는 월나라다. 루쉰의 고향이 사오싱이고, 이 고향에서 이 고향을 배경으로 루쉰은 좋은 글들을 남겼다. 그 유명한 아큐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그의 흔적들이 당연히 유적으로 남아 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한 것도 적지 않다. 와신상담의 월나라 구천 이야기도 나오고, 월나라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간단하게 알려준다. 이런 인문학적 정보들이 이 산문집에는 가득하다. 일반적인 여행 정보를 생각하고 펼치면 쉽게 낭패를 볼 수 있다.

 

검은 호수 묵지와 왕희지를 연결하고, 다시 문화대혁명을 이어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묵지가 검은 것은 왕희지가 붓을 많이 씻어 그렇다고 하는 단순한 노력만을 강조하지 않고, 여기에 타고난 재능까지 담아 이야기를 풀어낸다. 재능은 노력이 함께 할 때 그 빛을 발한다. 상하이에서 고속철도로 1시간 조금 지나면 도착하는 도시라고 하는데 왜 이 사실을 이전에 몰랐을까. 알았다면 이전에 출장 갔을 때 한 번쯤은 다녀왔을지 모르는데. 당일치기 여행으로 가볍게 다녀올 정도의 거린데 말이다. 아쉽다.

 

소설가의 문장은 이 산문집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여행 작가들이 쓴 비교적 가벼운 감상기에 비해 묵직한 느낌이다. 여행지 정보보다 사오싱과 관련된 역사와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런데 글과 다른 풍경 사진에 놀란다. 나의 머릿속 사오싱 풍경은 근대화 이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중국 소설가의 작품을 글 속에 녹여 낸 것은 루쉰의 고향이자 문화대혁명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전에 읽은 글들인데 아주 낯설다. 문화대혁명기에 많이 것이 파손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역사 유물이 남아 있다. 작가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일만 개의 다리 중 몇 개를 건너고 싶다. 물론 한 손에는 루쉰의 책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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