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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갇힌 소년 ㅣ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로이스 로리 지음, 최지현 옮김 / F(에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의 대표작인 <기억 전달자>를 집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놓은 것은 확실한 듯한데 말이다. 처조카가 <기억 전달자>의 원서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그러다 작가의 성장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정보를 보았다. <기억 전달자>는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언젠가 읽겠지만 이번 소설은 과연 그럴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최근까지 읽었던 자극적인 소설들에 비해 너무 평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예상한 장면 하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있지만 말이다.
1987년 6월 여의사로 오랜 세월을 보낸 캐티가 자신의 집 근처에 있었던 어사일럼을 보고 옛 기억을 떠올린다. 최근에 읽은 책에 의하면 이 어사일럼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이 시설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미래가 사라지는 일이다. 작가는 이 공간을 다루지 않고,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시간은 1910년 9월부터 1911년 10월까지다. 이야기는 월 단위로 펼쳐지는데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잘 묻어난다. 어쩌면 이 시대는 그런 순수함이 지금보다 훨씬 풍부했던 시기였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1911년에 찍은 한 장의 소년 사진에서 이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한다. 그 사진에서 아이가 정신적 충격을 경험했거나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혼이 난 상처받은 아이란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반론도 할 수 있지만 작가가 평범한 시골의 풍경과 삶을 그려내면서 반전처럼 펼친 이야기는 이 인상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복원했는데 어떤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물론 제분소가 폭발한 이야기에서는 장르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부작용이 작용하기는 했다.
캐티는 여의사가 되고 싶어 의사인 아빠를 가끔 따라 다닌다. 그녀의 집에 가정부로 페기가 들어오는데 페기의 동생 제이콥이 자폐 성향이 두드러지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이콥은 동물들을 아주 잘 다루고 돌본다. 이런 제이콥에게 캐티는 관심이 있고, 작은 관계를 이어간다. 제이콥에 대한 아빠의 설명을 보면서 이 시절에 이런 자상하고 분별력 있는 아빠가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아빠 덕분에 캐티는 제이콥을 두려워하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제이콥과의 작은 우정도 그녀 집에 있는 두 마리의 말이 없었다면 생길 수 없었다. 나중에 그가 캐티에게 작은 고양이 선물까지 주지 않는가.
아이의 성장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갑자기 부쩍 크게 만들기도 한다. 이 소설 속 마지막 장면은 그런 역할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소년에게 일어난 일과 캐티가 이해하는 일은 같을 수 있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다르다. 침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소년의 기억이 손자들의 어사일럼 시설로부터 되살아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작가는 할머니의 미래를 알려주면서도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숨긴 채 평범한 일상으로 이야기를 채우다 반전을 벌인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를 하나 꼽으라면 ‘그 후 이야기’들이다. 간단한 후일담은 과거를 회상하는 설정이기에 가능했겠지만 던져놓은 이야기의 답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잔잔하고 밋밋하지만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나름의 재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