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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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개에 끌렸다. 정유정 작가의 추천평도 한몫했다. ‘평범한 이들의 관계에 대한 비범한 해부도’란 말에 눈길이 갔다. 책을 다 읽은 후 오래오래 가슴이 아리다고 했는데 나 역시 다 읽은 후 그 감정의 조각들에 흔들리고 있다. 네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과 그 일상이 어떤 특별함도 없는데 그 흐린 분위기에 조용히 휩쓸린다. 결코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이 나오지만 전체 분위기는 가볍지 않다. 냉정한 시선과 가독성 좋은 문장은 그들의 심리 묘사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이 네 남녀의 관계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히나와 가이토다. 히나는 가이토와 미야자와와 사귄다. 가이토는 히나와 하타나카와 사귄다. 이야기의 문을 여는 사람은 히나다. 그녀가 가이토와 사귄 이유는 사랑이 아니다. 그녀가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은 미야자와가 처음이다. 그를 안고 싶고, 그와 처음 섹스를 한 후 자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욕망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성교 장면을 묘사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렇다고 야하게만 표현하지 않는다. 성인들을 위한 문학상 수상자다운이라면 너무 뻔한 평가일까?

 

미야자와가 히나의 집에 와서 처음 한 일은 높게 자란 잡초를 제거한 것이다. 2주에 한 번 와서 풀을 벤다. 그러다 둘은 몸을 섞는다. 히나는 그가 결혼은 했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알고 싶지만 다른 한 편으로 두렵다. 그를 처음 만난 날 함께 온 여자가 그의 아내란 사실도 가이토가 알려줘서 알게 된다. 미야자와의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녀를 떠난 후에도 페이스북으로 그의 위치를 알고, 그를 찾아간다. 이때 풀어낸 감정들과 생활은 자신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가이토는 히나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결혼하고 싶어한다. 미야자와의 손길에 바뀐 그녀를 품고 있지만 둘의 감정은 하나가 되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강간을 하는 것 같다. 이런 관계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 히나가 미야자와를 만나러 가면서 그는 혼자가 된다. 이런 그에게 다가오는 여자가 하타나카다. 그녀는 아이가 있는 이혼녀다. 히나와 가이토처럼 요양보호사다. 연상이지만 신입이다 보니 가이토를 선배라고 부른다. 그녀는 속된 말로 헤픈 여자다. 자신에게 모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줄 때 작가는 그 어떤 판단도 섣부르게 내리지 않는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미야자와와 하타나카를 화자로 내세운 이야기는 어떤 열정도 감정의 깊이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이 선택한 직업과 삶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다른 환경과 조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미야자와가 수해를 보고 생각한 것과 하타나카가 사바랭을 말하는 장면은 아주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들의 감정이, 추억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은 히나와 가이토의 감정을 진하게 태우는 역할을 한다. 미야자와가 떠나면서 그 감정을 털어낸 히나의 현재 모습과 하타나카가 결혼하기로 하고 떠나면서 가슴 한 켠에서 안도를 느끼는 장면은 나중에 둘이 만났을 때 조용히 손을 잡는 장면과 이어진다.

 

아름다운 배경으로 후지산이 나오지만 일상 속에서 그 풍경은 그냥 늘 보는 풍경일 뿐이다. 자살 명소 수해 이야기는 가이토 아버지와 미야자와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그 존재를 한 번 떠올린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요양보호사란 직업이다. 30대의 남성조차 몸에 병이 생길 정도의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이 겹쳐져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란 사실에 알기에 더 공감한다. 이 직업을 벗어나기 위해 가이토가 기울인 노력은 보통의 요양보호사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더 낮은 임금을 받을 인력이 해외에서 들어올 수 있다는 걱정은 아주 현실적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서 이 직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교수의 말은 저임금과 몸의 상태를 떠올리면 공허한 주장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을 뒤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현실들은 또 다른 이야기와 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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