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 생활자 -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김혜지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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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의 일인 라이프. 솔직히 처음에는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요즘 세대들의 삶을 한 번 보자는 생각이 먼저였다. 목차에 나오는 조금 자극적인 제목인 ‘자위하세요?’란 제목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하나씩 사라졌다. 어떤 글에서는 동생과 자취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어떤 글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남자였기에, 다른 시대를 살았기에 알 수 없는 경험들도 많이 나왔다. 간결한 문장과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글은 가독성도 좋고 재미있었다.

 

여성 혼자 집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심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동생과 살 때 동생이 이사할 집을 구하러 몇 번 다녔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여성이 살면서 느끼는 공포는 잘 안다. 주변에서 늦은 시간 혼자 다니다가 당한 사건이나 혼자 사는 여성이 남성이 있는 것처럼 꾸민 설정 등은 예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인 나는 이것을 연결시켜 생각해보지 않았다. 늦은 밤 귀가하는데 내 앞에 여성이 홀로 갈 때 그녀가 느낀 무서움보다 왜 나를 두려워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였으니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 늘 마주하게 되는 것이 예산이다. 이 예산이 넉넉하면 쉽게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중개인이 보여주는 집들은 언제나 뭔가가 부족하다. 예산을 생각하면 위치와 집 상태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선유도 근처 원룸을 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옛 생각들이 교차했다. 현대인에게 출근 시간은 가격에 반비례한다. 교통이 편하고, 거리가 가까운 직장이 도시 외곽이라면 비용이 낮겠지만 대부분 도심에 사무실에 있다보니 비용은 올라간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피로도는 올라간다. 하지만 가깝고 비싸다고 환경이 모두 좋지는 않다. 옆방에서 뀐 방귀소리가 들리고, 옆집 출근 시간이 모닝콜이라면 말 다하지 않았는가.

 

혼자 살기 이야기에 가장 많이 담겨 있는 것은 여성 문제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선택을 반대할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녀 친구의 결혼식은 놀랍고 신선했다. 최근 아내에게 내가 듣는 말들은 집안에서 여성과 남성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나의 말과 행동에서 그것이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모양이다. 저자는 이런 부분이 아주 불편하다. 남동생이 대학 때문에 올라왔을 때 엄마가 기대한 바를 따르지 않는 이유를 보면 혼자 사는 삶의 편리함과 동생 뒤치다꺼리를 할 마음이 없음이 잘 드러난다. 그래도 동생이 살 집은 같이 찾아주는데 이때도 여성이 느끼는 불편함이 많이 보인다.

 

법적 보호자에 대해 쓴 글에서 강한 문제를 느꼈다. 아무나 법적 보호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친구나 동거자라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장에 공감했다. 이런 공감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할머니, 엄마, 딸의 몫이었던 일들에서 각각 다른 느낌으로 공감했다. 요가 예찬에 나의 뒤틀린 몸 상태가 떠올라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을 백패킹을 떠난 모습에 괜히 부러웠다. 장기간 배낭여행을 해보지 않은 나이고, 차의 편리함에 빠져 사는 나이기에 쉽지 않을 것이란 핑계를 댄다.

 

나를 지켜보는 것이 공포일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불편하다는 것은 여러 번 느꼈고 들었지만 말이다. 소개팅남 이야기는 그가 보통의 대한민국 남성이란 부분이 눈길을 끈다. 남성 사회에서 남자들의 행동은 남자들이 잘 느끼지 못한다. 혹은 과한 반응이란 말로 덮는다. 자위 이야기는 자극적인 물음과 달리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자는 내용이다. 생각보다 이것을 잘 모르는 여성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생리컵은 아주 낯설다. 혼자살기에 덜 부담스럽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행동도 많다. 자위도 그 중 하나다. 이 에세이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은 내가 만난 수많은 여성들의 삶과 생각이 뒤섞여 있다. 살아온, 살고 있는 환경이 다르니 당연한 일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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