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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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키는 모든 대여금고를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의미한다. 만약 대여금고의 마스터키가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시스템으로 이 마스터키 사용을 억제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악용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 소설은 데드키가 존재했던 시절 이 열쇠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 사람들과 이 열쇠 때문에 위험과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20년이란 시간을 두고 펼쳐지게 만들어 인간의 탐욕이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이 두 시간대의 주인공은 모두 여자들이고, 나이도 환경도 다르다.

 

1978년과 1998년이란 두 시간대 속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이 두 시간대를 결코 합치지 않는다. 1978년의 주인공은 겨우 열여섯 살 소녀 베아트리스고, 1998년 주인공은 건축회사 인턴인 23살의 아이리스다. 내 기준에서 본다면 둘 다 아직 사회의 이면을 잘 모를 나이다. 그리고 두 여성은 사회적으로 상대적 약자다. 이모 도리스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위조하고 겨우 취직한 베아트리스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 직원에 취직된다. 멋진 미녀인 맥스란 동료도 만난다. 반면 이 은행이 문을 닫은 후 20년 만에 건물 실사를 위해 온 인물이 아이리스다.

 

베아트리스와 아이리스는 자신들도 모르게 데드키와 그 정체가 의심스러운 547 대여금고에 다가간다. 작가는 이 둘이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기 전 그들의 일상을 차분히 보여준다. 평범한 직장 여성들의 모습이다. 그녀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이 은행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주 암시한다. 베아트리스는 FBI수사 소문이 있고, 아이리스는 한 시점에서 사람만 사라진 사무실 공간이 남겨져 있다. 베아트리스의 시간은 그 은행이 문을 닫게 되는 이유와 숨겨진 비밀을 조금씩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아이리스의 시간은 박제된 공간 속에서 의문의 상황을 불러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오래 전에는 신분증 위조가 쉬웠다. 전산자료가 없다보니 대조할 자료가 없으면 그냥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전 소설에는 이런 신분증 위조 이야기가 많다. 물론 요즘도 신분증 위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공문서 위조들도 프로그램으로 얼마나 멋지게 해내는가. 이런 시절에도 아날로그 방식의 열쇠를 이용한 대여금고는 아직 유효하다. 사실 집밖에 중요한 물건을 놓아두기에 대여금고만큼 좋은 것은 없다. 많은 소설들이 이 대여금고를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대여금고는 부패의 온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라가 저질러진다.

 

은행이 넘어갔다면 대여금고 주인들이 나타나 모두 찾아가야 정상이다. 통지가 늦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주인이 죽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 소설 속 한 사건은 한 여성이 자신의 대여금고 속 자산이 사라졌다고 말했고, 그 얼마 후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아주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폐쇄된 은행의 대여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절차도 복잡하다. 열쇠가 없다면 드릴로 뚫어야 한다. 20년 동안 몇 번 열린 적이 있지만 많은 수의 대여금고는 잠긴 채 있었다. 이유는 데드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열쇠를 우연히 아이리스가 발견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가치를 알지 못하면 보물이 아니다. 아이리스도 베아트리스도 대여금고의 열쇠가 지닌 가치를 잘 모른다. 사건은 언제나 이 두 사람의 주변에서 일어난다. 베아트리스는 도리스 이모의 병과 맥스의 실종으로 상황이 급변한다. 아이리스는 은행 건물을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진행되다 시체의 발견으로 급진전한다. 이 상황들 속에 밝혀지는 사실들은 부패, 비리, 탈세, 살인 등 돈을 위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일들이다. 그리고 거대한 탐욕은 결코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그 보물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모든 사건이 끝난 시점도 1998년에 머물고 있는데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있다. 과연 작가는 이 후일담으로 이 의문을 풀어낼지는 의문이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 가독성이 나쁘지 않다. 두 시간대를 교차하면서 비밀을 풀어내고 엮는다. 1998년보다 1978년도에 비밀이 더 많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왜 이모가 베아트리스를 데리고 사는지, 왜 은행에 힘들게 취직을 시켰는지 알려준다. 몇 가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부패한 집단에게 자신들의 비밀이 알려지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할 일이다. 돈의 가진 자들이 권력과 함께 할 때 그 힘은 더욱 거대해진다. 열여섯 소녀가 혼자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20년이 지나도 그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베아트리스의 현재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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