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절판된 책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다. 최근에 SF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좋은 SF작품들이 다시 번역 출간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전에 열심히 SF 소설들을 모은 적이 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고, 인터넷을 뒤져 겨우 모은 책들이 이제 새롭게 나오고 있다. 그 당시의 노력들이 약간 허무한 감도 있지만 먼저 읽었던 책들은 새로운 번역본에 잠시 추억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의 이전 번역본인 <야생종>도 집 어딘가에 있다. 다만 살 때 옥타비아 버틀러의 가치를 잘 몰랐을 뿐이다. 뭐 이런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지만. 그녀의 전작들을 흥미롭게 읽었고, 이 소설의 소개글들이 다시 나의 관심을 끌었다.

 

불사의 존재. 많은 권력자들이 바란 것이다. 일반 사람들도 바라는 바일지 모른다. 이 소설 속 두 주인공 도로와 아냥우는 불사의 존재다. 하지만 둘의 불사는 존재 방식이 다르다. 4천 년을 살아온 도로는 타인의 육체를 빼앗아 생존하는 존재고, 아냥우는 자신의 육체를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죽지 않는다. 도로의 생존 방식은 판타지에서 이혼대법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이것을 아주 쉽게 해낸다. 문제는 그의 혼이 들어간 육체가 아주 오랫동안 버티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냥우의 변신은 보고 먹는 것으로 일어난다. 동물로 변신이 가능하다. 바다에서 돌고래를 본 후에는 돌고래로 변신한다.

 

도로는 자신의 불사를 이용해 인종 실험을 한다. 교배를 통해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아냥우를 만나게 된 것도 길을 가다 그녀의 존재를 깨닫고 그녀를 통해 얻게 될 새로운 후손 때문이다. 아냥우처럼 자신의 관리 아래에 있지 않은 초능력자들을 야생종이라고 부른다. 4천 년을 산 그의 후예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고, 인종에 특별히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가 처음 아냥우를 만났을 때는 1690년으로 한창 노예사냥이 일어나던 시기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아냥우를 데리고 가는 것은 그곳에서 더 안전하게 교배하기 위해서다.

 

불사의 존재는 미신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배척과 공포의 대상이다. 아냥우의 생존은 공포와 변신으로 이어져왔다. 도로와의 만남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새로운 능력자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메리카로의 항해는 노예무역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도로의 자식이 운행하는 배는 그 당시 노예선에 비해 쾌적한 편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염력을 가진 아이작이 있다. 그의 놀라운 능력은 폭풍이 몰아쳤을 때 아주 잘 드러난다. 안전한 이동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작은 아냥우에게 반한다. 도로는 아냥우를 아이작의 아내로 준다. 아냥우의 생각과 너무 다르다.

 

도로에게 아냥우는 교배용 가축과 별 차이가 없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아이작에게 애정을 가지지만 자신의 뜻에 반대하면 언제나 죽일 수 있다. 아냥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녀의 능력이 원초적 충동을 억제하게 할 뿐이다. 아이작이 아냥우를 설득하는 장면은 자신과 그 후손의 안전을 위해서란 명분을 잘 보여준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의 선택이다. 이후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아냥우는 치유사로서 활약한다. 도로의 교배 실험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능력을 각성하는 순간이 생긴다. 이 순간을 잘 넘기지 못하면 미치거나 죽게 된다. 이 불안정성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혼자 4천 년을 살았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그 고독은 아냥우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도로가 아냥우의 몸을 빼앗을 경우 그 몸은 죽는다. 도로가 쉽게 죽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도로가 세운 마을에서 모성애를 발휘하던 그녀가 아이작과 자신의 아이가 죽는 것을 본 후 이 생활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녀의 선택은 돌고래다. 이후에도 정신적 상처를 받으면 돌고래로 변신해 자신을 치유한다. 재밌는 점은 그녀가 남자로 변해 아이를 낳은 적도 있다는 것이다. 도로가 백인과 여성의 몸에 들어간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도로는 후손들을 교배용으로 이용하고, 아냥우는 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차이가 있다.

 

도로의 불사와 교배 실험은 도로를 신으로 만든다. 도로가 건설한 마을의 여자들은 모두 도로와 교배하길 바란다. 이곳에서 일반적인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로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끼리 교배를 한다. 태어난 아이의 능력은 늘 불안정하다. 하지만 도로는 자신의 불사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은 죽인다. 어떤 초능력자가 자신의 영혼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중에 나올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패터니스트 시리즈 중 한 권인데 다른 작품들도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로와 아냥우의 존재가 어떤 관계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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