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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평점 :
현대 중국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위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읽었던 작품들 모두 나의 심금을 울렸다. 처음 시작은 <허삼관 매혈기>였지만 영화로 본 <인생>이나 다른 작품들도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내가 추천한 위화의 소설들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고, 나 자신도 위화의 신작이 나오면 언제나 위시리스트에 올리거나 구입한다. 그런데 소설에 비해 산문집은 조금 낯설다. 위화의 소설과 문장 등에 대한 평가를 어디선가 읽은 듯한 글 때문에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 글이 착각인지 현재는 불분명하다.
이 책의 제목과 간단한 책 소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가 한 명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의 음악 관련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기에 위화도 이 산문집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산문집은 음악보다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그리고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감상과 평론은 내가 얼마나 위화를 몰랐는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읽으면서 평론가 신형철이 왜 이렇게 이 산문집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단순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분석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읽은 책들은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고, 가지고 있는 책들은 살짝 독서의 열의를 다지게 만들었다.
앞에서 착각했던 위화의 문장에 대한 글은 그가 어려운 단어나 문장을 사용하지 않고 쉬운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전문적인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아 그랬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산문들은 결코 쉬운 단어나 문장이 아니다. 처음에 위화란 이름과 한 쪽의 분량을 보고 예상한 시간을 훨씬 초과한 것도 바로 이런 착각의 결과다. 작가에 대한 그의 분석은 정밀하고 통찰적이고 새로운 시선이 많다. 글들은 작품보다 작가에 더 집중하는데 작가의 삶을 다루면서 평론가처럼 글을 풀어내었다. 솔직히 말해 쉬운 글이 아니었다. 이렇게 어려운 작품들을 분석해낸 글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들이 얼마나 읽기 편한 소설인지 떠올리게 된다. 이 산문들 대부분이 90년대 후반에 쓴 것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나의 착각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어렵다는 윌리엄 포크너나 카프카 분석은 뒤로 하고 관심은 후안 룰포에 많이 집중되었다. 마르케스가 존경한 대목이 시선을 끌었고, 그 작품 <뻬드로 빠라모>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번역된 작품이다. 포크너의 작품들이 집에 있는데 그가 분석한 내용이 나중에 읽을 때 다시 떠오를지 확신할 수 없지만 작은 용기를 주었다. 예전에 카프카를 읽으면서 미로를 해맨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다시 체호프에 관심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주홍 글자>는 영화의 기억을 먼저 더듬게 만들었다. 이렇게 문학 이야기는 문장과 선율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로 넘어갔다.
위화는 음악을 어느 날 갑자기 듣기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들은 모양이다. 그가 풀어낸 작가와 작품들의 분석과 차이콥스키 찬양은 이전에 읽었던 수많은 음악 에세이의 기억을 더듬게 만들었다. 한때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듣기만 한 클래식 음악과 재즈가 다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음악과 문학을 연결해서 풀어낸 글들을 읽으면서 중국의 성조가 먼저 떠올랐고, 수많은 작가들이 클래식에 대한 자신들의 감상을 소설 등에 녹여낸 것들이 생각났다. 언제쯤 나에게도 이런 귀를 열릴까 하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먼저 다가왔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 수준 높은 글들은 나의 중구난방 독서와 음악 듣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작품 깊이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졌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산문집도 읽으면서 오래 전 읽었던 소설이나 들은 음악들이라 나의 감상보다 작가의 감상에 휘둘린 부분이 많다. 아마 시간이 지난 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소설이나 음악을 읽고 듣게 된다고 해도 위화의 평가가 제대로 떠오를지는 자신이 없다. 하루키의 글들처럼 말이다. 그래도 이 산문집은 위화에 대한 기존 인식을 깨트리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