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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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헌학자인 저자가 쓴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4가지 가치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이전 에세이는 <심연>과 <수련>이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이 시리즈를 계속 읽게 되었다. 고독의 가치와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훈련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이 저자의 책을 계속 읽는 것은 이런 훈련을 실천하기 보다는 고전문헌학자가 풀어내는 지식 때문이다. 그리고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이전이라면 이 책의 제목인 정적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삶이 바빠질수록 이 정적이 나의 삶에 필수 요소가 되어간다. 마음의 평정심이 최근 많이 깨어진 상태이기에 더욱 필요하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평정, 부동, 포부, 개벽 등이다. 각 부는 7개의 단어를 담고 있고, 이 단어의 숨겨진 의미를 저자가 전문지식으로 풀어낸다. 이 단어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나의 경우만 본다면 살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몇 개 있다. 대표적으로 간격, 중심, 무위, 눈물, 절제 등이다. 나머지들도 삶에 영향을 끼쳤지만 이 다섯 가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중에서 눈물은 최근에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울음을 억제한 삶을 살다가 호르몬 탓인지, 내 삶을 다른 면에서 보게 된 탓인지 이 감정의 표현을 수용하게 되었다.

 

살면서 가장 먼저 버리게 된 것 중 하나가 뭔가를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일이다. 이것을 버린 후 내 머릿속을 채운 것은 걱정과 분노와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단전호흡 흉내를 내면서 내면으로 파고들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정확하게는 내 욕심이 늘어나면서 사라졌다. 잠들기 전 생각하던 것도 스마트폰을 보게 되면서 끊어졌다. 다행이라면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그때의 고요는 저자처럼 명상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들이나 들어야한다고 생각한 방송에 매몰되어 있다. 아는 세계가 늘어나면서 욕심만 늘어났지 아직 그 욕심을 절제할 능력이 부족하다.

 

“사소,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했을 때 ‘신’이란 단어 대신 ‘악마’가 떠올랐다. 현실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놓친 디테일이 상대방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인과’의 문제는 과연 자연법칙 속에서 그대로 적용되는지 의문이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인과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법을 피해 얼마나 잘 사는지 보지 않는가. 이렇게 마음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내용에 반발이 생기는 대목들도 나온다. 이 과정 속에서 나의 의식은 조금씩 깨어난다.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나이가 들고 더 넓은 세상을 보면서 나의 세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깨닫고, 나와의 싸움에 승복할 줄 알게 되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감정의 폭주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완벽이 완벽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노력을 이해한다. 상상하는 시간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지금처럼 글을 쓰는 시간이다. 읽은 책을 복기하는 순간도 있지만 이 과정 속에서 나의 삶을 잠시 돌아본다. 정적 속에서 심연을 들여다보는 수련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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