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지음, 이동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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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출신의 미국 작가다. 그의 이력 중 눈에 끄는 대목은 역시 보스니아 내전으로 발이 묶여 난민생활을 한 부분이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내용에 의하면 그는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고 망명을 신청하고 미국에 남았다. 내전 당시 일어난 참혹한 일들을 생각하면 그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나중에 그의 가족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하지만 이 선택이 그의 삶을 곤궁하게 만들었다. 그린피스 운동원, 서점 판매원, 강사 등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집들을 방문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이런 삶의 경험 속에서 그는 영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 서점에서 이 작가의 번역된 다른 작품이 있는지 검색했다. 여러 작가와 함께 묶은 단편집이 달랑 한 권 있다. 다른 유명 작가의 찬사에 비하면 너무 적다. 뭐 이런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들은 솔직함이다. 처음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그가 한 행동은 자신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행동이다. 다행히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에세이에서 아주 가끔 그 여동생이 나온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들을 역자도 똑같이 경험한 것 같다. 하나는 친구들과 놀라가 터키인이라고 말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딸의 종양 이야기를 다룬 <수족관>의 한 부분이다. 그가 그냥 장난으로 부른 ‘터키인’이란 단어가 사람을 해할 수 있다는 것을 친구 알마르의 생일 파티에서 배웠다. 현실에서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들에게 이 단어가 어떤 학살을 불러왔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 단어의 사용이 집단에서 그 대상을 타자화하고 배척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단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보스니아 내전이다.

 

<수족관>은 딸의 종양으로 그가 경험한 최악의 상황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자신이 수족관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수족관 안팎의 완전히 다른 환경을 인식한다. 딸의 치료에서 느낀 절망적인 지식들은 바깥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 이 부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볼 때 많은 부분에서 감정이입되었다.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로 미국의 의료비가 떠올랐다. 나중에는 이런 것들도 사라지고 깊은 슬픔만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의 절규와 고통과 울음이 내 가슴속에서도 울렸다.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족 만찬에 먹었던 그리운 음식 이야기도 나오고, 한때 열심히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마의 산>은 나도 학창시절 이해를 잘 못한 채 읽었던 적이 있다. 자신은 그냥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던 일이 파시즘의 전조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는 사건도 있다. 한동안 이 사건으로 경찰이 찾아오는 악몽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교수가 나중에 그 실체를 드러냈을 때 파시즘과 인종차별주의자의 모습이 보인다. 삶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고, 한 순간의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 미국의 초대가 대표적이다.

 

그가 사라예보에서 즐겼던 것이 하나 있다. 축구다. 그런데 미국은 축구 모임이 흔하지 않다. 우연히 발견한 축구 모임에 가서 그가 경험한 일은 한 사람의 강한 의지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풍경과 작은 이야기들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체스는 솔직히 소년들에게 쉬운 놀이가 아니다. 몇 수 앞을 생각하고, 정석을 공부하는 일은 지루하다. 하지만 낯선 타국에서 이 체스는 그를 과거의 기억으로 끌어당기고, 그 기억을 떨쳐내게 한다. 이 놀이에 중독된 사람들 이야기는 한때 바둑에 빠졌던 나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게 이 책 속 이야기들은 낯선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고, 새로운 정보를 주고, 옛 기억을 회상하게 만들고, 죽음이 주는 깊은 아픔에 공감하게 한다. 소설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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