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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의 죄 - 범죄적 예술과 살인의 동기들
리처드 바인 지음, 박지선 옮김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평점 :
미술 매거진 편집장과 많은 전시의 큐레이팅을 했다는 작가 정보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일평생 예술계를 누비며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펄프픽션의 형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란 점과 데뷔작이란 사실도 흥미로웠다. 이런 이력이라면 예술계의 이면을 아주 잘 파헤쳐서 예술계의 민낯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몇 가지 예술계 이면을 조금 보여줄 뿐이다. 아쉬운 것은 왠지 모르게 이 소설에 쉽게 집중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다.
필립 올리버는 아내 어맨다 올리버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자신이 죽였다고 자수한다. 그런데 아내가 죽었던 시간에 아주 먼 곳에 있었다. 더구나 그는 울프심 증후군이라는 치매성 뇌질환을 앓고 있다. 재계의 거물이고, 수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애인은 예술가인 클라우디아다.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게 된 이유는 바로 어맨다이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딸을 가진 앤젤라와 이혼했다. 클라우디아가 그에게 두 번째 이혼을 요구한다. 어맨다는 이것을 승낙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 있어 알리바이가 완벽한 남편의 자수와 어맨다의 죽음으로 이익을 볼 사람들에 대한 수사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책의 화자는 필립의 친구인 잭이다. 그는 앤젤라, 어맨다 등과 친하고, 필립의 딸 멜리사의 대부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은 어릴 때 친구인 호건이다. 자수한 필립의 무죄를 증명하고, 범인을 찾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치부가 하나씩 드러난다. 무분별한 성관계와 돈에 대한 욕망과 예술의 상업적 모습도 같이 드러난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있는데 비디오 예술가라고 말하는 폴이다. 그는 아주 매력적이다. 여자들이 감히 그의 매력에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멜리사에게 관심을 두고 찝쩍거린다.
살인사건의 수사는 현재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 필립과 잭의 과거가 흘러나오고, 90년대 소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수집가에게 예술작품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상품이자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미술 갤러리 주인들은 신인을 발굴하고 이들을 키워 거대한 부를 일군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예술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난해하다. 행위예술에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데 이 피보다 미식축구에서 흘리는 피가 더 많다고 한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다.
어맨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관계인들의 알리바이를 계속 파고든다. 이 과정에서 대녀인 멜리사가 노골적으로 잭에게 대시한다. 어느 순간 그 아이에게 흔들리는 잭의 모습을 보고 로리타 콤플렉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폴이 멜리사를 유혹하려고 하고 그녀는 이를 적절하게 거절한다. 잭은 폴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작품 이면을 파고든다. 미성년자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가하는 비디오를 찍은 후 이것을 전 세계에 유포한다. 폴은 멜리사를 이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이를 수락하는 잭의 모습은 의아하다. 몰론 다른 반전들이 이후에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깊게 몰입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캐릭터들이 밀착한 것 같은 느낌이 아니다. 예술계 이면을 기대한 부분은 아주 부족했고, 알리바이들을 수사하는 과정은 일반 미스터리에 비교해서 약간 느슨하다. 현재일 것이란 나의 예상은 폴의 사업에서 엇나갔다. 부분적으로 재밌게 본 장면들이 있지만 그 시대와 장소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야기에 집중을 방해했다. 그리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이 긴장감을 한 번에 터트리는 방식이 조금 약하고, 이야기 곳곳에 풀어놓은 모호함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반전들과 여운들은 이 부분들을 조금씩 씻어내었지만 모두를 없앨 정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