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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였다
정해연 지음 / 연담L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처음 읽은 그녀의 작품은 <악의 – 죽은 자의 일기>이다. 상당히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정치인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간 것도, 마지막 서늘한 여운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고, 관심을 가진 부분은 저작권 기획소송 전문 변호사 김무일과 형사 신여주의 콤비 활동이다.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영화로 만들면 누가 이들의 역할을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 동안 TV를 잘 보지 않아 최근 배우들의 이름이나 역할을 잘 모른다. 그래도 내가 아는 배우들로 가상 캐스팅하는 재미는 줄지 않았다.
김무일은 쉽고 편한 길을 가려고 한다. 저작권법을 어기는 카페에서 소송 대상을 찾아 돈을 번다. 자신뿐만 아니라 거의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입해서 소송 건들을 만든다. 이런 그에게 사무장에 사표를 내민다. 이유는 사무장 아들이 저작권법을 어겨 소장을 받았고, 사무장이 아들에게 변호사 쓰레기와 함께 일한다는 말을 들어 감정이 상했기 때문이다. 일반 의뢰가 들어와도 김무일은 할 마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무장 때문에 다른 일을 하기로 한다. 그때 찾아온 손님이 건물주 권순향이다. 그가 온 이유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고, 자수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신여주는 형사다. 다양한 무술을 습득하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미모 때문에 길거리 캐스팅도 자주 당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처럼 경찰이 되었다. 여주의 아버지는 사건 현장에서 죽었고, 얼마 후 엄마도 죽었다. 이 기억은 그녀가 바른 경찰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입주한 건물에 자신에게 고백했다가 엎어치기 한 판을 당한 무일이 있었다. 가끔 둘은 술 한 잔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티격태격하는 사이긴 하지만. 무일은 건물주의 자수에 동행하고, 여주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건물주의 의뢰를 받은 날도 둘은 친구 엄마의 포차에서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건물에서 여주로 향해 떨어지는 사람을 보고 그녀를 밀친다. 떨어진 사람은 건물주 권순향이다.
권순향의 자백에 이상한 점이 있다. 그가 집세를 제대로 내지 않은 302호에 들어갔다가 몸싸움을 하다 상대를 죽였다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그를 내보내고,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만들었다. 권순향이 들고 온 신문기사도 7년 전 자살사건이다. 당연히 권순향에게는 이 사건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말한다. 그의 자수 의뢰가 있은 날 자신의 집에서 추락사한 것이다. 뭔가 수상하다. 무일은 이 일로 일반 소송에서 손을 떼려고 한다. 여주는 이 사건을 더 조사하려고 하지만 존경하던 팀장이 나타나 자살로 처리한다. 찜찜하다. 더 파고들고 싶다. 이런 그녀에게 화물차가 달려들어 위험한 순간을 만든다. 무일이 이 사건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자수하고자 한 사람의 자살과 그 사건을 파헤치려는 사람을 공격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아주 무거운 이야기로 바뀔 것 같지만 소설을 이 콤비의 존재와 대화와 연애 감정 때문에 가볍게 풀려나간다. 자살로 처리된 302호 남자의 신원을 알게 되면서 단순한 살인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는 국정원 직원이었다. 그의 직업은 알려지지 않는 채 죽을 당시 발견된 수많은 음란 자료들이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다. 변태의 자살로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무일과 여주는 가볍게 이 사건의 허점을 파헤친다. 허술한 국정원의 작업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국정원이 얼마나 허술하게 사건을 만드는지 몇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7년 전 사건의 담당자가 여주의 팀장이란 사실과 그녀를 감시하는 존재을 느끼게 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가독성이 좋고, 콤비의 활약은 유쾌하고 재밌다. 무일의 행동은 반전 매력을 보여주고, 둘의 로맨스는 알콩달콩한다. 이 두 자살 사건 배후에 존재하는 조직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보여줄 때 시간은 몇 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현실을 반영한 마무리는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당시의 분노를 다시 떠올린다. 적의 반격은 정보를 쥔 자의 강력한 한 방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현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이 씁쓸함을 지워주는 것은 당연히 이 두 사람의 존재와 행동과 대화들이다. 2부가 올 가을에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괜히 즐겁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시간 내어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