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 사계절 네 도시에서 누리는 고독의 즐거움
스테파니 로젠블룸 지음, 김미란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미혼일 때, 노총각으로 살 때 어쩔 수 없이 혼자 여행을 했다. 어떤 날은 혼자 차를 몰고 나가 하루 종일 운전하고, 차 안에서 자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해외로 나가서는 대충 짜놓은 일정과 여행 카페의 글들을 참고한 혼자만의 놀이였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 좋았던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르지만 그 시간들 속에는 혼자 온 여행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도 있다. 이때마다 누군가와 함께 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그 편함과 자유로움에 나를 맡긴다. 이 다른 감정들 속에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던져주는 것은 역시 홀로 여행하던 시간들이다.

 

내가 이 책에 끌렸던 것도 바로 네 도시와 고독의 즐거움을 소개한 글 때문이다. 네 도시 중 가본 곳은 파리 한 곳 밖에 없지만 다른 도시들도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얼마나 자주 본 곳이던가. 또 그 도시들은 나의 여행 리스트에 항상 올라가 있는 곳들이다. 혹시 여행의 정보를 얻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 책은 여행가이드북이 아니다. 며칠 동안 혼자 도시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다룬 책이다. 혼자 다니게 되면서 여행에 더 집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그 누군가를 신경 쓸 수밖에 없고 기억은 동반자와 함께 한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실제 나의 경험도 그랬던 적이 더 많다.

 

낯선 도시 세 곳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 한 곳을 돌아본다. 파리, 이스탄불, 피렌체 등이 여행지라면 뉴욕을 살고 있는 곳이다. 파리 출장에서 시작된 이 기획은 다시 파리 방문으로 시작한다. 혼자 여행하면서 음식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혼밥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을 인용한 부분은 흥미로웠고, 언제부터 잊고 있던 음미란 행위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박물관에 갔을 때 감상보다는 훑어보기가 된 관람을 떠올려주었고, 파리란 공간 속을 살고 거쳐간 수많은 문인과 학자와 예술가들의 흔적이 오래 전 파리 방문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천천히 더 오랫동안 머물면서 도시를 느껴보고 싶었던 그 감상 말이다. 발로 도시 여기저기를 걸었던 그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스탄불. 언제부터인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고, 기독교의 흔적 위에 이슬람의 문화가 쌓인 곳. 하맘에 대한 글은 괜히 한국 찜질방을 떠올려주었고, 보스포루스 해협은 다른 여행 작가의 글과 말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스탄불과 파묵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아직 읽지 못한 <순수박물관>을 재현한 곳이 나의 시선을 끌고, 저자가 떠날 때 일어난 테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얼마 전 읽은 세계여행 작가의 글에서 이스탄불 대신 다른 지역이 나온 것을 보고 아쉬웠는데 이것을 조금 해소했다.

 

피렌체 이야기 속에서 잘 몰랐던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대홍수가 대표적이다. 이 도시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 하나가 있는데 저자는 다루지 않는다. 수많은 예술가와 예술작품만으로 충분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르네상스 예술품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중세 예술가 이름 대부분이 이곳에서 다시 발견된다.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 반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이 없는 것은 또 아쉽다. 너무 많은 볼 거리가 정신을 어지럽힌다는 스탕달의 표현은 루브르 박물관의 수많은 예술품을 생각하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뉴욕, 많은 여자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다. 와이프가 신혼여행지 두 곳을 말했을 때 들어간 곳이다.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인 곳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곳에 살고 있다. 그녀의 글은 자신의 도시 다시 보기다. 세계적인 관광지 중 한 곳인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낯설게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리포터의 눈과 습관으로 일상을 보는 자세란 표현에서 나의 도시와 동네를 다시 생각해본다. 한 도시에 오래 살아도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고, 모르는 곳이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혼자 살 때도 서울을 천천히 돌아본 적이 거의 없다. 목적지로 그냥 걸어갔을 뿐이다. 그러다 가끔 예상하지 못한 발견을 한다. 그녀의 글들은 나를 이런 생각으로 이끌고, 도시 여행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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