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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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형사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현대문학에서 가가 형사 시리즈라고 처음 내었을 때 시리즈 첫 권부터 보자고 마음먹고 사놓은 구판들을 생각하면 참 늦은 시작이다. 이번 개정판 이전에는 가가 형사 시리즈가 하나의 시리즈로 묶여 나오지 못했다. <악의>와 <붉은 손가락>이 별도로 나왔었다. 사실 이 두 작품을 읽으려고 하다가 가가 형사 시리즈란 사실을 알고 살짝 멈춘 것도 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악의>부터 읽게 되었다. 첫 권부터 읽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조금은 있지만 왜 이 책을 지금에야 읽었을까 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 개인적으로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나의 취향에 잘 맞기 때문이다.

 

집에 그냥 묵혀두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이 많다. 한때 좋아해서 산 책도 있고, 워낙 인지도가 높아 사놓은 책들도 있다. 그러다 습관처럼 그의 책을 사고, 읽으면서 상당히 많은 실망을 했다.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히는 장점은 있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주기 때문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읽고 아주 깔끔한 이야기 전개에 만족했고, 단편들에 더 잘 어울리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작품들의 편차도 상당해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그의 작품이 나오면 바로 사는 주변 사람들도 있다. 너무 많은 책들이 나와 솔직히 복불복 성향이 있다.

 

<악의>는 가가 형사 시리즈 세 번째다. 개정판과 구판의 차이를 알지 못하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이전부터 이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 읽어보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목차만 보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기록이 교차하면서 한 살인자를 찾아내고, 왜 그가 피해자를 죽였는가 하는 동기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범인을 초반에 잡으면서 사건이 쉽게 해결되었고, 수기를 통해 동기도 밝혀졌지만 가가 형사는 이 동기가 수상하다. 그의 수사는 더 이어지고, 새로운 과거가 드러나면서 반전으로 이어진다.

 

가가 형사 시리즈를 처음 읽었지만 그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은 이미 많이 알고 있다. 그가 학교 선생을 하다가 형사로 전업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왜 학교 선생을 그만 두게 되었는지 하는 이유가 이번 소설에서 나온다. 이것은 살인 동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가 보여주는 상황들은 지극히 자신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지만 읽을 때 독자들은 이것을 그렇게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범인으로 잡혀 자백한 것을 그대로 믿게 된 이유도 수기란 개인 기록 때문이다. 여기에 몇 가지 증거가 곁들여지면 이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작가가 수기와 기록이란 다른 용어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노구치는 가가 형사가 한때 선생으로 일했던 학교의 국어교사였다. 친구 히다카의 추천으로 아동문학을 시작했다. 첫 수기를 읽다보면 그의 행동에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형사들은 그를 조사해 범인으로 잡는다. 이때의 트릭을 보면 아련한 과거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다카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몇 년 전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적이 있다. 이 아내의 물품 몇 가지가 노노구치의 방에서 발견되면서 그를 범인으로 잡게 된다. 그의 자백이 수기란 점과 형사들의 생각이 유령작가란 부분에 맞추어져 있었기에 빠르게 해결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이후에 가가 형사의 기록을 통해 이 수기를 다시 조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소설 속에서 히다카의 소설 중 한 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렵 금지구역>이란 소설이다. 너무 사실적으로 기록해 그 가족들의 반발을 산다. 학교 폭력과 그 가해자가 이후 한 창녀에게 죽게 된 이유를 파헤친 소설이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사실적인 부분이라 문제를 삼은 것이다. 작가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 당시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그 가족들이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피해 당사자들의 그 당시 피해는 그들이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소년원에 다녀왔다고 모두 해결될까? 어떻게 보면 두 피해자의 갈등인데 이 부분을 다룬 소설들이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처음 노노구치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기록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작가의 작품과 다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역자의 노력이 중간에 있었을 테지만 두 사람의 문체가 달라 순식간에 매혹되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살인 사건인데 그 이면을 파헤치고, 또 파헤치면서 거대한 트릭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완성도는 바로 이 과정 속에서 나온다. 다른 작품처럼 군더더기 없는 전개지만 무엇보다 곳곳에 깔아놓은 장치들의 이용이 탁월했다. 소설이나 소품의 이용과 무엇보다 수기란 설정이 거대한 트릭을 만들었다. 이 시리즈에 더 관심이 간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최고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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