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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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콩쿠르상 수상작이다.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은 아주 짧은데 역사의 현장을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특정한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지 않고, 그 시대의 다양한 인물을 끄집어내어 2차 대전 직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2차 대전 직전의 잘 알려지지 않은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어떻게 보면 역사의 현장들을 모아 소설화했다고 할 수 있다. 역자의 글을 보면 작가가 이런 종류의 소설을 주로 쓴다고 하니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1933년 2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스물네 명의 신사가 비밀회동을 한다. 그들이 만난 인물은 히틀러와 괴링 등이다. 히틀러가 독일의 총리가 된 이후 만남이다. 이 신사들은 우리에게도 아주 낯익은 이름들이 많다. 그들의 이름은 바스프, 바이엘, 아그파, 오펠, IG 파르벤, 지멘스, 알리안츠, 텔레풍켄이다. 내가 대부분 알고 있는 이름이고, 이 이름들은 지금도 독일의 주요 기업들이다. 이 이름들을 보면서 일본 재벌 기업들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청산 문제는 어느 순간 사람들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그들은 이전의 위세를 되찾는다.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기 위해 총리 슈슈니크를 몰래 부른다. 자이스잉크바르트를 총리로 임명하도록 강요하기 위해서다. 그를 잘 몰랐던 나는 그가 히틀러의 말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히틀러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스트리아의 독립 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계획한다. 이 계획은 실패하고 수감된 후 전후 석방된다. 그와 히틀러 사이에 있는 작은 에피소드는 한 편의 희극이자 전체적으로 비극이다. 두 국가의 정상들이 만나는 자리가 이렇게 기울고 비밀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이스잉크바르트가 총리로 임명되지만 독일의 전격전이 펼쳐진다. 이 전격전은 아주 우스운 장면을 연출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독일 군단의 모습이 아니다. 전차는 멈추고, 군대로 정체된다. 히틀러가 정해진 시간에 달려가기 쉽지 않다. 작가는 오스트리아에서 히틀러가 한 연설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본다. 기록 영상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그 장소에 모인 사람들과 환호성과 박수 등을 살짝 의심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기록영상이 사실인 것은 아니다.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의 속마음이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유럽 강대국들의 시선을 가릴 필요가 있다. 영국 정보국에 도청된다는 사실을 알고 거짓 통화를 한다. 하지만 괴링은 자신이 한 행동이나 말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욕심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자신의 거짓을 드러냈다. 작가가 영국과 프랑스 등을 위대한 민주주의 구가들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표현 그대로 다가오지 않는다. 비틀고 비꼰 모양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조금만 주시했다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어쩌면 그들 속내에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스트리아 병합 후 수많은 자살자들이 있었다. 시대는 그들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가스 회사는 유대인들에게 가스 공급을 거부했다. 이유는 유대인들이 선호하는 자살 방식이 가스이고, 사후에 가스 요금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말이지만 그 시대의 모습을 잘 대변해준다. 작가는 몇 명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그들이 자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고통이 집단적이고, 그들의 자살은 타살이라고 말한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이것과 더불어 독일 대기업들이 유대인들을 착취한 일에 대한 기록과 배상 문제는 다시 일본 기업의 착취와 배상 문제로 연결된다. 현재 일본이 벌이는 적반하장의 반응과 일부 정치권의 대응은 이 소설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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