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에느 리일 지음, 이승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흔히 북유럽 스릴러에서 기대하는 액션이나 스릴러를 예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예상은 읽으면서 점점 더 깨어졌다. 강렬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릴러도 일반적인 스릴러의 공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빠가 할머니를 살해했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아주 잔혹한 살인마를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는 다르다. 왜 아빠는 엄마를 죽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이 가족사로 먼저 들어간다. 뛰어난 목공 실력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두 형제가 자랐다는 것과 아버지가 번개를 맞고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다시 생각하니 아니다. 번개 맞고 죽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또 아버지가 관을 만들고 누워 있는 장면도 특이하다. 이것이 둘째 아들 옌스 호더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형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섬을 떠났고, 옌스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목공 실력으로 작은 생계를 유지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로 겨울을 날 돈을 번다. 이런 삶에 변화가 온 것은 홀데트 섬에 일자리를 찾아온 마리아가 오면서부터다. 마리아는 정치인과 결혼을 강요하는 부모를 떠나왔다. 그리고 섬에서 가장 잘 생긴 옌스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는 아직 옌스가 사람과 교류를 제대로 하던 시기다.

 

마리아는 쌍둥이를 낳았다. 옌스가 아버지에게 말했듯이 딸은 리우, 아들은 카알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어느날 이 쌍둥이 중 카알이 아기 침대 옆에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다. 누가 죽인 것일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산후우울증을 의심하고, 며느리는 자신을 탐탁하지 않게 여긴 시어머니를 의심한다. 이 사건은 옌스가 엄마 엘세를 집밖으로 몰아내는 계기가 된다. 엘세는 여동생 집에서 몇 년을 살다가 말없이 집에 온다. 집은 엉망이다. 마리아는 엄청나게 비대해졌고, 리우는 학교를 보낼 생각조차 않는다.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리우에게 할머니를 아는 아줌마라고 소개한 것이다.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죽기 얼마 전이다.

 

집은 아버지의 수집으로 사람이 살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 충분히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사람을 옌스는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점점 일을 멀리한다. 어느 순간 딸은 좀도둑이 되어 다른 집에서 물건과 먹을 것을 훔친다. 이 소설을 중반 이후 전직 학교 선생이자 현재 유일한 펍의 주인이 리우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냥 기억의 착오 정도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야기에 반전이 펼쳐지는 것은 이 주인이 리우의 흔적을 쫓아가면서부터다. 후반에 그의 방문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이 가족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비롯한다. 앞에서 쌓아올린 이야기가 긴장감을 고조시킨 것이다.

 

제목인 송진은 송진에 갇혀 오랜 세월 동안 원형을 유지한 곤충들 모습과 이집트의 미라 제조법과 관계 있다. 특히 미라 제조법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아가 두 번째 임신을 조산으로 사산아를 낳자 옌스는 이 아름다운 아이를 미라로 만든다. 이 과정을 리우는 옆에서 본다. 간략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섬뜩하고, 한 인간의 뒤틀린 마음과 죄책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카알이 죽게 된 원인도 한몫한다. 작가는 이 원인을 끝에 한꺼번에 폭발시키지 않고, 중간에 알려주면서 옌스의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동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리우, 이 작은 소녀는 좀도둑이고, 훌륭한 사냥꾼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부모가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한 아이다. 옌스는 아이를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리우의 곁에는 언제나 죽은 쌍둥이 형제 카알이 보인다. 처음에는 카알이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카알의 행동과 반응 등은 리우의 또 다른 의식세계를 보여준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죽은 아기를 미라로 만들 때다. 너무 비대해진 엄마가 편지로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여기저기 남긴 것을 곳곳에 삽입했는데 이것이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이 글들은 더욱 간결해지고, 현실은 더욱 참혹해진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 복잡해지고, 이 가족의 뒤틀리고 잔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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