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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변주곡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사랑에 대한 다섯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다섯 단편을 실고 있는 줄 알았다. 읽으면서 왠지 같은 인물들이 계속 등장해 조금 의아했다. 열두 살 소년의 첫사랑부터 노중년의 사랑 이야기까지 이어지는데 그 대상이 자꾸 바뀐다. 장소는 이탈리아 남부의 한 섬에서 벌어진 첫사랑 이야기를 빼면 모두 미국 뉴욕 근처다. 특별히 작가는 시대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화려한 상황이나 사건이 벌어지지 않지만 내밀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와 감정 표현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첫사랑>은 대학생 폴이 어린 시절 휴가 때 방문했던 이탈리아 남부 섬을 찾아가면서 느낀 감상을 다룬다. 불 탄 가족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외면상 이유라면 실제는 열두 살 당시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난니의 흔적을 되짚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고 하지만 소년의 행동 속에 그 감정은 그대로 드러난다. 난니는 목수고, 어머니는 책상과 액자 등의 수리를 난니에게 맡긴다. 폴은 난니의 집에서 함께 수선 작업을 한다.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소년이 난니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주 열정적이다. 몇몇 표현들은 외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섬 사람들의 욕심이 밖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첫사랑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는 표지의 그림에 담겨 있다. 이 단편에 나온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다른 단편에서 그대로 나온다.
<봄날의 열병>은 읽으면서 혼란을 느꼈다. 화자가 누군지 몰랐기에 더욱 그랬다. 자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저녁에 작은 파티에 참석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몇몇 이름과 상황들은 다음 단편에서도 이어진다. 내가 이 책을 단편집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이 이유도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연인이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질투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마지막에 가면 반전이 펼쳐진다. <만프레드>는 짝사랑의 감정을 절절하게 녹여내었다. <봄날의 열병>에서 이 이름을 보지 않았다면 연작의 의심도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몰래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아주 잘 표현했다. 욕망과 현실, 감정과 행동의 섬세하고 응축적인 묘사는 열정적인 짝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만든다.
<별의 사랑>은 폴의 학창시절 여자 동창 이야기다. 파티에서 다시 만나 섹스를 하지만 며칠뿐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삶 속에서 이 둘은 묶여 있다. 그 시절, 그 감정, 그 욕망들은 결코 멈춰 있지 않다.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지만 폴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둘은 학교를 찾아가서 자신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때 왜 하나가 되지 못했는지 말한다. 이 이야기 속에 <첫사랑>에서 짧게 다룬 에피소드가 다시 나온다. 진짜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사랑이란 말에, 별의 사랑, 내 사랑이란 표현에 함축되어 있다.
<애빙턴광장>은 하나의 표현이 강하게 부각된다. ‘가장 친애하는 당신’이란 관용적 표현이다. 자신이 거절하고 첨삭해준 여자 작가를 만나 자신의 욕망을 되돌아본다. 작은 인연과 반복된 만남과 솔직한 욕망과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잘 드러난다. 반가운 이름이 다시 나오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앞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평범한 노년의 이성애자가 느낀 욕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삶을, 사랑을, 욕망을 되짚고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크게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작고 놀라운 반전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낸다.
읽으면서 젊은 작가란 착각을 했다. 작가의 출생연도를 보면 1951년 생이다. 그가 살아온 길이 얼마나 이 소설 속에 녹아 있을까? 그의 성 정체성은 무엇일까? 모두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응축된 감정을 섬세하고 내밀한 묘사로 풀어내는 문장은 상황에 따라 바뀌면서 그 열정과 격정을 잘 표현한다. 다섯 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춤춘다. 사랑은 자신이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