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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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지만 이 작가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썼다는 사실에 먼저 눈길이 갔다.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나의 관심을 더 끈 것은 아서클라크상 수상이다. 여기에 덧붙여 인류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라는 거대한 재해로 종말을 맞이한 세계와 종말 이후의 삶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란 부분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쁘게 말하면 흔한 종말과 좀비 소설일 수도 있지만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라면 다른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실제 일반 장르소설에서 보았던 좀비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감염자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이 교차하는 장면들이 큰 구분 없이 이어진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단 3일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당연히 과거가 이야기 사이사이에 스며든다. 이 과거와 추억이 무심코 읽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흔한 좀비소설처럼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소설에서 좀비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해골, 망령 같은 단어가 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보면 좀비와 아주 닮았다. 기괴한 설정이라면 붙박이 망령 정도랄까. 이 망령은 감염된 채로 움직이지 않고 그곳에 그냥 그대로 있다. 도시 수색대가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이 망령을 처리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감염자들은 이미 군대가 한 번 크게 처리한 적이 있다. 다만 건물 곳곳은 아직 미해결 상태다.

 

제1구역. 별명으로 마크 스피츠로 불리는 주인공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남은 감염자를 처리하는 곳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염으로 인류의 대부분이 좀비처럼 변했지만 힘들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움직여 함께 생활한다. 막강한 화력을 가진 군대가 감염자들을 물리친 후 남은 생존자 중 일부가 한 지역에서 살아간다. 이 생존 과정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주인공의 과거 회상이다.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도 이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감염되지 않았다고 해도 가족과 친구들은 감염되어 좀비처럼 그들을 물어뜯는다. 주인공이 경험한 장면 중 하나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먹는 것인데 이 설명이 상당히 특이하다. 이때 그가 느낀 감정과 심리를 해석한 부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생존하기 위해 비감염자들은 소리도 내지 않고, 감염자 무리들의 시선도 끌지 않으려고 한다. 비감염자 중 일부들은 무리를 지어 도적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생존자들 중 일부는 감염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 무리도 조심해야 한다. 아직 완전히 감염자들을 몰아낸 것도 아니고, 치료제를 발견한 것도 아닌 상태다. 이 와중에 생존자들의 삶을 터전을 회복하기 위해 군대가 지나간 곳의 건물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일을 수색대가 한다. 뉴욕처럼 거대한 빌딩들이 있는 곳이라면 일일이 확인해야 할 곳도 많다. 수많은 고층건물과 사무실들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장소가 있다는 것은 변수가 언젠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ASD(종말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Apocalyptic Stress Disorder)는 생존자들이 겪는 장애다. 주변에서 가족들이나 친구 등이 먹히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라면 정신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치료 방법, 당연히 없다. 혼자 견뎌내야 한다. 정도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자살한다. 삶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읽으면서 수많은 좀비 소설이나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정면에서 이 문제를 다룬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종말이 왔다고 해도 인간의 의지가 순식간에 꺽이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 대한 많은 찬사들 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유혈, 서정, 인간, 핏빛 고어물 등이다. 좀비란 단어가 나올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포와 액션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액션은 거의 없다.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좀비 무리를 기대했다면 책을 덮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종말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종말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싶다면 좀 더 세밀하게 읽으면서 현대인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좀비들이 방벽을 무너트리고, 인간의 공포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영화의 한 장면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스릴을 즐기는 시간보다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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