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 - 한사오궁 장편소설
한사오궁 지음, 문현선 옮김 / 책과이음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교 사전>의 작가다. 그렇게 알고 한사오궁으로 검색했는데 나오는 책은 <암시> 한 권이다. 책 제목으로 검색하니 한소공이란 한자 표음 이름이 보인다. 이 이름으로 다시 검색하니 낯익은 책 한 권이 또 보인다. <산남수북>이다. 물론 낯선 책 한 권도 있다. 괜히 이 책에게도 관심이 간다. 가끔 조금 낯선 작가의 경우 이런 검색을 한다. 표기된 이름이 달라 한 작가의 작품이 모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작가라고 해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문자와 발음과 표기법이 달라 생기는 작은 오류다. 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나 소득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문자와 기억과 이미지에 대한 소설이다. 총 4부 112개의 꼭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와중에 자신의 생각을 아주 자주 녹여낸다. 어떻게 보면 소설보다 인문학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더 많다. 덕분에 뭔가 유익한 것을 읽은 듯한 뿌듯함을 주지만 이해력이 딸려서인지 머릿속에 남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작가가 풀어낸 많은 이야기들이다. 문자와 이미지에 대한 해석보다 기억과 그 이야기가 하나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았다. 아마 평소 내가 책을 읽는 방식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소개에 나온 위화나 모옌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난해하다. 실험적 장편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형식과 주제가 색다르다. 거기에 왜인지 모르지만 책의 편집도 특이하다.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각 문단 끝이 들쑥날쑥한다. 문단의 시작은 같은데 말이다. 한 쪽의 분량도 적지 않고, 쪽수도 500쪽이 넘는다. 읽고 난 후 뿌듯함을 느낀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 역자의 글에 의하면 작가의 글은 다비론(多非論)이라고 하는데 읽을 때 느낀 아리송함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된다. 어쩌면 나의 핑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읽으면서 머릿속을 계속 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문화대혁명에서 현대까지 오는 과정이 시간 순이 아니다. 정확하게 시간대를 표기해주지 않아 대충 맞춰야 한다. 이야기의 흐름으로 순서를 대충 파악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것까지 맞출 수는 없다. 뭐 이런 순서가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억이 늘 순서대로 나는 것도 아니고 정확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기억은 이미지로 남아 있고, 이것을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정확성에 문제가 생긴다. 언어 밖 이미지에 대한 소설이란 부분에 공감한다. 실제 4부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범위의 확장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 부분은 작가가 후반부에 그린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읽다보면 머릿속을 울리는 좋은 글들이 가득 나온다. 피상적인 글들도 있지만 나의 고민을 담고 있는 글도 상당히 많다. 나의 이해력이 좀더 좋다면, 알고 있는 지식이 조금 더 많다면 비교해야 할 부분도 많다. 작가가 4부에서 현대 중국 청년들의 삶을 간결하게 표현한 부분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고, 이 부분이 다시 우리의 삶에서 본 장면들과 연결되었다. 역사를 둘러싼 왜곡된 시선들은 언제나 불편하다. 작가 자신이 홍위병으로 문화 대혁명을 경험한 것이나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간 일들은 이전에 읽었던 중국 소설들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힘들게 읽었지만 재미난 부분이 상당히 있다. 이 때문에 작가의 다른 책에 관심이 늘었다. 인용하려고 한 수많은 문장들이 있지만 그냥 지나갔는데 결론적으로 잘 한 것 같다. 왜냐고? 수많은 이미지의 편린을 그 문장으로 고정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사유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문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어와 이미지를 양비론으로 풀어낸 부분은 더 내공을 쌓은 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불가의 불립문자(不立文字)에 더 강하게 공감한다. 점점 더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 깨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