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체 옆에 피는 꽃 - 공민철 소설집 ㅣ 한국추리문학선 4
공민철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평점 :
단순히 한국 추리작가의 단편집이란 이유로 선택했다. 최근 장르 문학이 조금 더 활성화되었다고 하지만 몇 명 익숙한 이름의 작가를 제외하면 크게 관심을 둔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선택이 앞으로 주목해야 할, 아니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 한 명을 만나게 만들었다. 아홉 편의 단편들이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작가들을 만날 때면 예전에 사놓은 오랫동안 묵혀둔 오늘의 추리소설들이 떠오른다. 혹시 그 작품들 속에도 내가 놓친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 한국추리작가협회 황금펜상 수상작들을 실고 있다. 황금펜상이 최우수 단편에게 수여한다는 것과 그것을 2년 연속으로 받았다는 사실은 이 작가의 글빨이 상당히 좋다는 의미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소설들은 이 작품들이 아니다. 표제작 <시체 옆에 피는 꽃>과 <도둑맞은 도품>에 눈길이 더 간다. 표제작은 1인극과 관객 참여형 연극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의 연쇄살인의 범인과 그 이면을 풀어나간다. 다섯 살 때까지 납치법의 손에 길러졌다는 소개와 제목 때문에 좀 잔인한 전개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 재밌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마을의 아이라는 설정은 조금 아쉽다.
<도둑맞은 도품>에 눈길이 간 것은 이유가 간단하다. 학생 탐정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들을 잘만 다듬으면 연작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 학생이 추리하면서 진범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예전에 학생 추리물을 읽을 때 재미를 떠올려주었다. 신인상을 받은 <엄마들>은 아파트와 집값을 엮어 풀어가다 반전을 불러온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이들의 욕망이 빚어낸 현상에 놀라지 않지만 반전과 엄마들의 모습에는 순간 섬뜩했다. 엄마들의 과거가 현재 아이들에게 투영되는 모습은 불편한 사실이기도 하다.
황금펜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낯선 아들>과 <유일한 범인>이다. <낯선 아들>은 화자의 시점을 통해 먼저 오해하게 만들고, 다른 이를 등장시켜 현실을 보게 만든다. 이 현실 속에는 악의가 넘실거리지만 그 속에는 외로움과 모성애가 가득하다. 사실들의 나열 속에 가려진 진실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유일한 범인>은 고독사의 다른 이면을 파헤친다. 방송에까지 나온 할아버지의 죽음을 더 알기 위해 최초 발견자이자 할아버지의 술친구 역할을 한 수종을 만나 이 죽음의 이면을 파고든다. 진상의 발견이 씁쓸함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4월의 자살동맹>은 왕따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풀어간다. 자살하려는 왕따 대상 유성민을 막기 위해 김원종이 동맹을 맺는다. 이것이 자살동맹이다. 성민은 계속 학내 폭력에 시달리지만 이것을 기록하면서 자살 후에 증거로 남기려고 한다. 원종이 성민의 자살은 막은 이유는 씁쓸하고, 하나의 목적이 생기면서 그 폭력을 견디고 즐기는 성민이 낯설다. 편지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반전이 감탄보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성민의 여동생은 왜 이 편지를 보내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가장의 자격>은 아들의 살인과 외톨이 삶을 퇴직자 아버지가 다시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아들에게 무관심했던 그가 아들의 자살과 재혼한 아내의 시한부 인생을 앞두고 한 가족의 가장이 되려고 한다. 조금 뻔한 설정에서 아버지의 선택과 할아버지란 존재가 충돌하는데 이 부분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할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일까? <사랑의 안식처>는 안식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 짠하다. 그것으로 끝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기는데 누구에게는 미래보다 오늘과 내일이 더 중요하다. 자기 딸이 성폭행당해 죽었고, 이것과 관계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연관성은 없지만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범죄자에 대한 통지문 하나가 그 피해 가족에게 어떤 연쇄작용을 일으키는지, 이 관리방식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