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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평점 :
일본 국어사전 두 편찬자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국민적 베스트셀러인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만든 겐보 히데토시와 야마다 다다오가 두 주인공이다. 이 둘은 대학 동기이고, 각자 거의 혼자 사전 한 권을 엮은이들이다. 단순히 두 사전의 편찬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고, ‘말’의 본질을 풀어낸다. 동시에 처음 같은 사전을 편찬했던 두 인물이 왜 갈등을 일으켰고, 두 종류의 사전이 나오게 된 이유를 파헤치는 지적 미스터리를 다룬다. 물론 이 둘이 처음 만든 사전이 지닌 의미도 같이 다루면서 사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트린다.
원래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것을 책으로 출간했다. 방송 당시 제목은 <겐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 - 사전에 인생을 바친 두 남자>였다. 하지만 방송은 한정된 시간 안에 압축적이고 강렬한 편집으로 내용을 담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책은 방송에서 누락된 부분을 더 채워낸 것이라고 한다. 물론 방송 특성 상 연출에 의한 재미가 더 있을 수 있다. 화려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곁들여진다면 일본 쇼와시대 사전 역사 최대의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를 더 쉽게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 이 프로그램은 제30회 ATP상 최우수상, 제40회 방송문화기금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책은 제62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책은 지적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 서로 다른 두 사전의 대표적인 단어 해석을 풀어놓고, 그 단어의 의미 속에 숨겨져 있던 두 편찬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 속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겐보 선생이다. 처음 그에게 새로운 사전 의뢰가 온 것에서 시작해 어떻게 판본이 발전했고, 이 둘의 갈등이 어떤 사전으로 나누어졌는지 보여줄 때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전의 의미가 바뀐다. 겐보 선생이 현대어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야마다 선생은 사전의 역할은 문명 비평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의 차이가 단어의 뜻풀이에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연애란 단어를 풀어낸 두 사전에서 아주 충격적인 단어를 발견한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에서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이란 글이다. 반면에 <산세이도 국어사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산세이도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에이(A)에 실린 의미들이다. 키스, 페팅(B), 성교(C), 임신(D), 중절(I)로 이어진다고 하는 7~80년대의 은어를 실고 있다. 은어로 ABC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실었다고 한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아 사전에서 빠졌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겐보 선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야마다 선생의 뜻풀이에는 백도를 ‘과즙이 많고 맛있다’고, 붉돔을 ‘얼굴은 붉은 도깨비 같지만 맛있다’고 풀어놓았다. 이런 사전 솔직히 낯설다. 그런데 이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판매 수량이 2천만 부가 넘는다고 한다. 만약 한국 국어사전에 이런 뜻풀이를 담았다면 어떨까? 국어사전에 실린 백도는 “복숭아 품종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으로, 모양이 둥글며 살은 희고 무르다. ‘흰 복숭아’로 순화.”라고 되어 있다.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비슷하다. 눈에 띄는 표현은 ‘순화’정도랄까?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낸 것은 사전에서 자주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를 다르게 풀어낸 사전들이 공존하고, 이 두 사전이 모두 잘 팔렸고,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 재밌고 신기하다. 저자는 이렇게 개성이 강한 두 사전의 편찬자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시간을 따라가면서 왜 이 둘이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파헤친다. 물론 겐보 선생이 처음 새로운 사전 편찬자가 되어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된 <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부터 시작한다. 대학원생이었던 그가 홀로 편집을 담당했고, 그의 조수 역할(이것은 야마다 선생의 표현이다)을 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왜 이런 일들이 생기게 되었는지 파고든다. 저자는 이 과정은 미스터리처럼 풀어간다.
저자의 놀라운 추리 능력은 두 사전에 실린 단어 속에서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단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두 거장의 갈등과 결별과 용서 등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리고 겐보 선생의 용례 수집과 그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용례 카드 145만 장이란 숫자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가족의 삶이 어떠했는지 보여줄 때 조금 씁쓸했다. 반면에 야마다 선생의 가족사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사전에 모든 것을 바친 겐보 선생이었기에 더 부각되었는지 모르겠다.
둘의 갈등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서문에서 시작했다. 몰래 만든 것처럼 느껴졌던 설정은 다음에 밝혀지는 내용으로 인해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단어 하나가 둘의 갈등에 불을 지피고, 출판사의 입장이 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갈등이 해소되면서 뜻풀이와 용례도 바뀌는데 이 장면들이 아주 흥미롭고 재밌다. 인문 에세이가 이런 재미를 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겐보 선생의 말은 소리 없이 변한다고 한 것과 야마다 선생이 말은 부자유스러운 전달 수단이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많은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실제 내가 한 말이 어떻게 상대방에게 왜곡되었던가. 사전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