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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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었었다. 그 후속작도 읽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나에게는 마음 깊이 와 닿지 않았다. 결코 많은 분량이 아닌데, 어렵고 힘든 이야기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게 잊고 있던 작가가 충격적인 도입부를 가지고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부부싸움 끝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하게 1952년 6월 15일 일요일 정오 무렵이다. 이 장면을 본 후 그녀의 삶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이 소설은 그 기억을 다시 재구성한 것이다.

 

처음 예상한 것은 왜 이런 참혹한 장면이 벌어졌는가 하는 의문을 파고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작가는 이 충격적인 장면의 이면을 파헤치기보다 자신의 삶에 더 파고든다. 단순히 그 사건에 집착했다면 제목이 ‘부끄러움’보다 다른 것이 더 맞다. 그런 충격적인 사건이 있은 뒤에도 부부는 별 탈 없이 잘 지낸다. 이성적으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렇게 이 순간은 영원히 박제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녀가 경험했던 것들이 하나씩 나온다. 그 중에서도 그녀의 계급을 표현할 때 이 소설의 제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립학교를 다닌 그녀는 그 속에서 친구도 만들지 못하고, 자신의 계급성만 깨닫는다. 교육받지 못한 부모와 가난 등은 그녀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런 감정을 나 자신도 어릴 때 느낀 적이 있다. 누추한 집을 친구에게 말하기 얼마나 어렵고 부끄러웠던가. 이 감정은 이후 나의 삶을 지배한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 이후 부끄러움은 작가 삶의 방식이 된다. 어려서 깨닫지 못했거나 은연중에 무시했던 것들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간 여행에서 그녀가 경험했던 일들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작가가 “부끄러움은 반복되고 누적될 뿐이다.”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전후 얼마 되지 않은 그 시절은 분명히 지금과 달랐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시절의 모습이 조금씩 떠오른다. 물론 명확한 이미지를 만들 정도로 섬세한 묘사가 곁들여지지는 않는다. 그 당시 기억이 앞서고, 감정이 뒤따른다. 기억의 부정확함을 감안하면 그때 감정이나 기억의 정확도는 얼마 정도일까 궁금해진다. 그녀가 가진 사진으로 그 당시 기억을 불러오는데 이 또한 정확도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의 부정확한 기억력 탓일까? 하나는 분명하다. 6월 일요일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몸에 배어버렸다고 한다. 이 짧은 소설은 그 부끄러움의 기원을 찾고,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녀가 느낀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부모의 직업, 궁핍한 생활, 노동자였던 과거, 우리의 존재 양식 등에서 비롯한 결과물이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녀가 계층을 말하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쉽게 적응할 수 없는 사립학교의 모습은 이 부끄러움을 더욱 키워준다.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녀의 부끄러움보다 나의 부끄러움들이 먼저 생각난다. 사라예보 시장 바닥에 떨어진 박격포탄에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표현하지만 이 부끄러움은 일시적인 것이다. 이미 부끄러움이 몸에 밴 그녀와 비교할 수도 없다. 건조한 문장으로 풀려나오는 그녀의 1952년 6월 일요일은 박제되었다. 나도 그녀 몸에 밴 부끄러움보다 이 사건이 강하게 몸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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