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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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작품인 <감색 운동화 한 켤레>가 낯익어 선택했다. 아마 비슷한 제목의 다른 소설과 헷갈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나의 부정확한 기억력은 언제부터인가 제목만 가지고는 읽었는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소설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2011년 겨울부터 계간지 <문예중앙>에 이 소설의 전반부를 연재했다고 한다. 이 소설의 4장까지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완성작으로 출간되었다. 연재 당시 제목은 <올드 타운>이었다. 개인적으로 올드 타운이란 제목보다 현재의 제목이 더 시선을 끈다.

 

소설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경수네 가족이 무동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그 속에서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이제 다 자란 경수와 친구들의 삶이 나오고, 전반부에 깔아둔 설정 등이 하나씩 튀어나와 의혹 등을 풀어준다. 무심코 본 장면들이 뒤에 밝혀지는 사실로 인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황당한 이야기들은 더 황당한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결코 재미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꽤 두툼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잘 엮여 있다.

 

중산층 자영업자의 몰락이 비닐하우스촌인 무동으로 경수네 가족을 이끌었다. 마지막 사기에는 경찰이었던 경력도 소용없다. 사채는 경수 아버지를 집에서 떠나게 만들고,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이런 이야기만 무겁게 펼치면 재미가 없을 텐데 로컨롤 고와 토마토 문이란 커플을 등장시켜 현실을 한 번 비튼다. 이들은 만남부터 비현실적인데 결혼 후 아들 열두 명을 낳는다. 아들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공장으로 가서 돈을 번다. 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상위층에 해당하는 노가다다. 아들들이 돈을 벌어오니 생활에 여유가 생긴다. 돈이 계속 쌓이고, 이로 인해 토마토 문의 시대가 열린다. 이때도 비현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즐거운 이야기가 나온다.

 

떡볶이 가게를 한 경수네가 망한 것은 시대를 앞선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수가 벌인 한 번의 놀이 탓이다. 건물 화장실에 쓴 음란 낙서는 경수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작은 장난이다. 물론 이런 장난이 커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여자 아이를 좋아한다는 낙서는 업종 전환을 독촉하게 만들고, 이것이 결국 사업의 몰락과 사채 이용으로 이어진다. 무동으로 이사 온 날 엄마가 보여준 행동은 비참한 환경에 대한 자기방어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웃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린 경수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귄다. 이 과정에서 또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 황당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재미난 인연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경수네에만 머물지 않고, 무동 주민들로 확장되고, 그들로 한정된다. 이 때문에 각자의 사연을 들을 수 있고, 관계가 더 밀착된다. 인호네 수퍼가 어떻게 생겼고, 그들의 몰락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보여줄 때 욕망의 하층부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게 된다. 경수의 엄마도 한국의 부동산 욕망의 희생자 중 한 명이다. 가진 자의 여유와 권력이 없는 그들은 더 많은 변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그 가족들에게까지 전달된다. 경수와 인호와 유미 등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좋든 나쁘든 기억과 추억이 머물고 있기에, 그곳을 벗어난다고 해도 특별한 삶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머문다. 물론 떠날 기회가 생기면 떠날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마리의 돼지의 낙타’는 제목 그대로 마리의 돼지가 낳은 낙타다. 마리는 민구의 누나이자 공부방 살인사건의 당사자다. 돼지가 낙타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낙타가 무동에 나타나고, 민구는 걸어서 중동까지 간다. 작가는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집어넣으면서 현실이 꼭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의 현실은 실제가 아닌 보여주고자 하는 시각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가. 무동의 한자를 둘러싼 해프닝이나 서울의 위성도시 이름을 위성시라고 지은 것과 근교 농업지구와 재개발 철거민 등을 엮은 것에서 그가 쓴 소설들의 연장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이야기꾼 한 명을 발견했다. 더 많은 소설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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