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작가의 다른 작품인 <40세, 미혼출산>을 읽었다. 상당히 재밌게 읽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좋아 다른 작품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하니 낯익은 제목들과 표지들이 상당히 보인다. 작가를 제대로 몰랐기에 그냥 무심코 지나간 책들이다. 아마 이 책들 중 몇 권은 나의 위시리스트로 올라갈 것 같다. 물론 다른 책들처럼 언제 읽을지 모르는 책더미에 묻힐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공고히 하게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이번 소설이 했다. 이름도 조금씩 머릿속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호스피스 병동의 여의사 루미코는 미녀이지만 언어의 표현력이 많이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둔감하다. 당연히 자신의 노력이나 마음과 달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다 화단에서 청진기 하나를 발견한다. 이 청진기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환자의 몸에 청진기를 대면 환자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환자가 후회하는 시간으로 돌아가 새로운 선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험은 루미코도 같이 한다. 이런 후회와 새로운 경험의 공유가 루미코를 환자에게 신뢰받는 의사로 만든다.

 

dream, family, marriage, friend 등 네 편의 이야기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유명 여배우의 딸이 꿈꾸었던 배우의 삶, 가족보다 일이 먼저였던 직장인, 딸의 결혼을 반대한 엄마, 친구의 거짓말을 대신해주지 못한 아쉬움 등이 후회의 감정으로 죽음을 앞둔 그들이 뒤덮는다. 마법의 청진기로 이들의 속마음을 파악한 루미코는 그 후회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삶을 살게 한다. 이 다시 사는 삶은 그들이 가진 후회의 감정을 날려버리는 기회가 된다. 시한부 삶이 남은 그들에게 마음의 평온함을 남겨둔다.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자신의 현재에 불만이 있다면,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나 자신도 지난 삶을 돌아보면 그 순간들이 적지 않게 있다. 소설 속 상황처럼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강한 후회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나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것이다. 작가는 마법의 청진기를 통해 현실의 1분으로 마법의 1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이 경험은 그들이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삶의 순간으로 이끈다. 네 이야기 중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가는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이끌면서 현실을 긍정하게 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른 삶을 살아보는 과정이 반드시 실현 가능했던 삶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다른 선택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엄마와 닮지 않았지만 유명 여배우의 딸이란 후광과 지저분한 연예계를 보여주고, 승진을 포기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삶이 오히려 더 높은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딸이 외모 외에 볼 것 없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았는데 그 남자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방송에서 보여줄 때 느낀 후회의 감정은 그 남자와 그 가족의 실체를 통해, 또 다른 환자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마음속에 담고 있던 여자가 돈을 훔친 것을 친구가 먼저 말해 그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회한 삶의 이면이 드러날 때 삶의 서늘한 현실이 불쑥 다가오고, 반전이 펼쳐진다.

 

이 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루미코의 가족사가 등장하고, 그녀를 좋아하는 동료 의사 이와시미즈를 조금씩 이해한다. 한때 모델을 할 정도로 잘 생기고 큰 병원의 후계자란 소문이 있는 이와시미즈는 루미코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동료였다. 새로운 경험은 그녀의 둔감력을 약하게 만들고, 편견으로 바라본 그의 삶을 제대로 알게 한다. 이렇게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감정은 슬며시 마음 한곳에 자리를 잡는다. 작가는 판타지 같은 설정 속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누가 그녀에게 이 청진기를 전달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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