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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노벨상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문학상은 그나마 발표할 때 기억하지만 다른 상들은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평화상은 더욱 그렇다. 아는 사람이나 단체가 받을 때는 기억하지만 나머지는 아쉽게도 그냥 지나간다. 이 상의 권위나 시대상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2018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이 책의 저자도 사실 나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최소한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녀의 활동 기간을 생각하면 더 낯설다. 유럽과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고, 한국의 언론들이 이런 인물들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금은 남탓을 하고 싶다.
IS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한때 이 단체가 세상을 뒤덮은 적이 있다. 언론에서 이 단체의 일부를 보여주었지만 한국에서는 피상적이었다. 잔혹한 영상이나 몇 가지 상황 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떨까? 시리아 난민에 대한 우리의 대처를 생각한다면 또 어떨까? IS가 점령한 지역에 살던 민족이나 국민들은?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한 지명과 이름이었을 뿐이었다. 야지디란 종교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저자인 나디아는 이라크 북부 야지디 마을 코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책의 앞부분은 나디아가 자란 마을과 자신의 가족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난하지만 노동력을 위해 대가족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학의 발전이 TV, 휴대폰 등을 가져다주지만 종교적 갈등을 사라지게는 만들지는 못했다. IS가 이 마을을 점령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야지디 마을에서 순진한 처녀로 살아가던 나디아에게 ISIS의 점령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조직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쿠르드노동자당(PKK)이다. 페슈메르라고 불리는 이 군인들은 결정적인 순간 몰래 떠났다. 대학살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ISIS는 이라크 등에서는 다에시로 불린다. 이들은 놀랍게도 야지디 여성들을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성 노예로 삼는다. 코초에서 남자들을 모아서 학살하고, 여자들을 차에 태워 자신들의 점령지에 보내 노예로 만든다. 어떤 방식으로 여자를 선택하고, 매매하는지 나오지만 그들이 저지르는 성폭행의 형태까지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행간으로 읽어야 한다. 어떤 여성들은 극렬하게 저항하고, 일부는 자살하지만 나디아는 그들의 성폭력에 그 어떤 저항을 하지 않는다. 저항하면 다른 폭력이 가해지고, 더 큰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탈출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실제 탈출해서 자신의 경험을 세계에 알리지 않았던가.
다에시가 점령한 곳에서 야지디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그들이 탈출했을 때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말할 때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나디아는 그들이 용기 있게 나섰다면 그 피해를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나디아의 탈출을 도와주었던 가족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보라. 이런 일이 알려지면 그들의 행동과 영혼은 더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이들을 옹호할 마음도 없다. 나디아를 도와준 나세르 가족 같은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신고는 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탈출하다 잡힌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을 발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수적이다. 또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디아의 증언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야지디 여성들은 결혼 전까지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이렇지 못할 경우 가족 살인까지 일어난다. 다에시들이 야지디 여성들을 겁줄 때 이런 사실을 계속 이야기한다. 나디아가 처음 탈출했을 때 이 사실을 숨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 학대와 처량한 경험담에 더 관심을 두려고 한다. 나디아는 이것을 넘어 오빠가 살해당한 일, 어머니의 실종, 소년들의 세뇌까지 모두 말하려 한다. 나세르와 함께 탈출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데 이것도 그 상황을 잘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 나디아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당했는지 보여줄 때 분노할 수밖에 없다.
탈출이 성공했다고 행복한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탈출하지 못한 여자 친척들과 사람들, 새롭게 알게 된 죽음들, 열악한 환경 등이 펼쳐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나디아 등이 휴대폰으로 안전 지역에 머물고 있는 가족과 계속 통화를 하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오만과 무지 탓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인정하지 않은 탓이다. 나디아는 다에시들을 법 앞에 세우기 원한다. 그들이 벌받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UN등에서 연설할 때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자신의 경험과 의지를 표현한다. 이 지속적인 노력이 그녀를 노벨 평화상으로 이끈 것 같다. 많은 생각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간과 종교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