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연적>이란 소설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아마 이 소설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이번 작품에 대한 관심도는 조금 떨어졌을지 모른다. 젊은 몸을 조종하며 욕망을 채우는 노인이란 소개글을 보면서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육체의 강탈이었다. 노쇠한 몸을 젊은 몸으로 바꾸는 sf적인 상상력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sf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새로운 몸으로 나의 정신 혹은 영혼이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아바타 조정에 더 가깝다. 자신이 선택한 인물을 성장시키고, 자신이 목표한 바까지 그 인물이 도달하기까지 물신양면으로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성취욕을 대리만족한다. 게임을 잘 몰라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옛날 다마고치와 비슷하다.
파우스터는 파우스트가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해 선택한 인물을 의미한다. 이 선택된 청춘들은 파우스트들이 착용한 기계를 통해 파우스터와 동일한 시선과 감각을 경험한다. 부를 동반할 경우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이 성장을 도와주고, 그 과정의 일부를 직접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 경험을 위해서는 한국의 경우 입회비만 100억이고, 이 파우스터를 돕기 위해 수십 억 원의 돈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많은 조력자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당연히 권력과 금력의 도움이 뒤따른다. 파우스트들이 이런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당연하다.
박준석. 외손 파이어볼러다. 내년에 메이저리그에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그가 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의도적인 사건이다. 경이라고 하는 여자가 저지른 일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준석이 파우스터이기 때문이다. 경의 아버지는 준석의 여자친구 지수의 파우스트였고,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재벌 회장이다. 경은 아버지를 죽게 만든 인물을 찾아 복수하고 싶어 준석에게 접근했다. 당연히 준석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의심의 씨앗이 뿌려지고, 증거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면서 자신을 조정하는 인물을 찾아 복수하고 싶어 한다.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진 이 소설의 첫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을 다룬다.
준석과 경의 시선보다 오히려 파우스트들의 작업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새롭게 입회한 회원이 선택한 차은민의 행운과 파우스트의 도움은 준석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론하게 만든다. 자신이 선택한 인물이 목표치까지 도달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지 보여주고, 그 도움의 손길 뒤에 어떤 욕망이 자리잡고 있는지 알려준다. 태근이 준석의 메이저리그 행을 바라는 것은 어릴 때부터 꿈꿔 온 아메리카드림이고, 남선은 은민을 통해 좌절된 우아한 삶과 성공한 화가를 이루고 싶다. 이들이 가진 돈과 권력은 청춘들의 꿈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비록 그들은 모르겠지만.
경의 도움으로 준석은 태근이 자신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알게 된다. 이것은 태근과의 싸움에서 작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준석은 야구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건장한 체격과 튀어난 야구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싸움에서 이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권력의 속성을 알고, 아직 그 권력의 끈을 가지고 있거나 돈으로 권력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 야구 선수의 힘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짓밟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짓밟을 수 없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파우스트 때문이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고, 자신의 파우스터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중독성은 더욱 강해진다.
소설은 예상하지 못한 두 번의 반전이 벌어진다. 그 하나하나가 예상의 뛰어넘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우리의 성공이 과연 어떤 누구의 도움이 없이 가능한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가독성 있는 이야기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전으로 삼고, 놀라운 상상력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파우스트들이 더 늘어난다면 세대 간의 갈등과 파우스터를 통한 대리전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과학이 더 발전하면 인간의 육신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삼는 sf 설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과학의 발전이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