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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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 이름이다. 이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그런데 작품 목록을 보니 낯익은 제목 하나가 보인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란 책이다. 구해 놓고 몇 년을 묵혀두고 있는 책들 중 한 권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호평 때문에 샀다가 그냥 묵혀두었다. 뭐 이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니 새롭지도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이 나를 이 책으로 인도했다. ‘퓰리처상 100년 만의 가장 과감한 선택’이란 문구는 더욱 나를 부채질했다. 읽으면서 어느 부분은 감탄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취향을 탔다.

 

아서 레스. 그는 게이다. 50세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중년의 동성애자다. 사실 게이라는 사실을 빼면 한 남자의 진한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아직 나의 머릿속은 이 사실이 먼저 떠오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서는 전 남친 프레디의 결혼 소식에 충격을 받고 세계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난 이유는 그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서다. 실연의 상처는 여행을 떠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여행 내내 이 상처들이 그의 삶을 들쑤신다. 더불어 그가 사랑했던, 그를 사랑했던 시인의 기억들도 같이 동반한다. 여행은 멕시코, 이탈리아 등을 지나 마지막으로 일본을 거치는 일정이다. 이 여행은 문학과 관련된 일도 있고, 사막에서 자신의 생일을 보내기 위한 것도 있고, 일본 가이세키 요리 기사를 쓰기 위한 것도 있다.

 

결코 짧은 여행이 아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이다. 기억과 아픔을 떨쳐내기 위한 여행은 남친과 함께 한 도시와 공간과 추억으로 뒤덮여 있다. 그를 초청한 문학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간 곳들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자신 있다고 생각한 독일어는 작은 해프닝의 연속을 불러온다. 그리고 잠깐 새로운 연인이 생기지만 이것은 작은 일탈일 뿐이다. 그는 결혼한 상태도 아니고, 누군가와 맺어져 있지도 않다. 이 작은 일탈이 가는 곳마다 생기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과 공감이 연결될 때 잠시 이루어진다.

 

그의 추억 속에는 두 사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인 로버트고, 다른 하나는 친구의 아들인 프레디다. 이 둘의 기억이 이 소설 속에서 반복되고 뛰어나온다. 그 기억은 장소와 관계 속에서 불쑥 올라와 그를 삼킨다. 독자는 이 기억을 통해 그의 삶과 고민 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 로버트의 격려 속에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몇 권을 책을 출간했다. 큰 방향을 일으킬 정도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를 초청하는 단체들이 있다. 멕시코도, 이탈리아도, 독일도 그래서 간 곳이다. 물론 이 초청을 승낙한 것은 프레디의 청첩장이 원인이지만 이 여행은 그가 완전히 무명은 아님을 보여준다. 무명이라면 누가 초청을 하고, 그의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겠는가.

 

솔직히 이 소설의 재미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문장의 흐름이나 유머가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피곤함도 한몫했는지 모르지만 집중력이 깨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상당히 좋은 가독성을 가졌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아서가 보여준 자신감 없는 행동과 생각들이 나를 처지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빛나는 순간들이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는 아쉬움도 있다. 지금도 몇 가지 에피소드는 나의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된다. 나이에 관해서는 그의 고민들이 나에게는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예전에 후배들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 빠졌을 때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의 행동들이, 집착들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파고든다. 시간은 사랑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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