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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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작가의 전작인 <외로움살해자>의 평이 좋았기 때문이다. 낯선 작가를 만날 때 이런 작은 서평 하나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실제로 책을 받아 읽으면서 가독성이 좋아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방화범과 그 방화범에 피해 입은 알코올중독자, 부패 정치인과 그에 기생하는 조직 폭력배, 기자와 형사와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 등이 끝까지 정신없이 달리게 만든다. 물론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방화범의 능력과 행동 등이 너무 과하게 설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부패 정치인이 보여주는 권력에 대한 욕망은 방화범과 더불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벌인다.

 

착한 청년이었던 형진은 방화범에게 큰 화상을 입는다. 여동생이 불 속에서 죽는다. 이 사건은 그를 조금씩 뒤틀리게 만든다. 방화범을 잡아야 하고, 방화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회로부터 조금씩 격리된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술의 힘을 빌려 잠든다. 불이 나면 현장에 달려가 그때 그 방화범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기대는 자책과 절망으로 뒤덮인다. 술은 유일한 탈출구다. 만약 그를 통해 특종을 얻길 바란 김정혜 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김정혜는 한때 신문사 에이스였다. 하지만 남자에게 빠지고, 남자에게 차이면서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형진에 대한 정보는 특종의 냄새를 풍겼다. 끈기와 노력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당연히 형진은 거부한다. 그의 사연을 취재한 방송이 그의 삶을 돌려놓지도, 희망을 던져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정혜는 밥 사주고, 술 마실 돈을 주는 여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방화 사건이 터지면서 이 둘은 하나로 묶인다. 형진의 방화에 대한 전문 지식이 빛을 발하고, 거의 폐인인 그를 정혜가 도와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때만 해도 이 콤비의 새로운 활약에 대한 기대와 현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무택. 서울 시장을 노렸지만 계속 낙천한 정치인이다. 서울시장을 넘어 대통령까지 넘보는 장무택은 출연 비중이 낮지만 연쇄 방화로 기존 권력을 무너트리려 한다. 권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9.11 음모론을 생각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이것을 실현하는 하수인이 철우다. 돈이라면 그 어떤 험악하고 잔인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보이지만 철우는 장무택을 한 방 먹일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돈의 힘은 철우로 하여금 계속 연쇄 방화를 일으키게 한다. 여기에 형진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진짜 방화범이 서울의 건축물에 불을 지른다. 이 혼돈과 피해 규모와 대범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과하게 나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찰 등이 너무 무력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 경찰의 무능함 혹은 부패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물론 유능하고 정직한 경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더 많을 것이다. 이 무능함을 최대한 부각시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 어떤 경우에는 방화범에게 한 팀이 모두 죽는 경우도 생긴다. 방화범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에 비해 형진과 정혜가 보여주는 활약은 대단하다. 형진이 자신을 환자로 만든 방화범의 수법을 간단하게 간파하는 모습이나 모방범을 찾아내는 활약 등은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행운이 작용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에는 권력의 힘을 작용한 부분도 있다. 그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너무 나갔다.

 

극단으로 상황을 몰고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면 감성을 자극하는 설정이 나타난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형진이 용의자이고, 서울이 불타면서 경찰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고 해도 이들의 등장은 지극히 감상적이다. 만약 그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달랐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방화범의 설정 자체도 판타지 같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안정된 문장과 진행은 작가의 전작과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다양한 군상을 극한으로 다루는 솜씨가 좋고,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잘 살아 있다. 문득 나의 불만이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면서 가능성을 무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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