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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개 장발
황선미 지음 / 이마주 / 2019년 3월
평점 :
오랜만에 황선미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면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딱 한 권 읽었다. 그 유명한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그때는 이 동화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내가 읽은 후 몇 년이 지나자 아주 유명해졌고,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졌다. 솔직히 그 당시 얼마나 재밌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아내에게 권해서 읽게 했더니 아주 재밌다고 했던 것만 기억난다. 아마 그때는 지금보다 더 한정된 책에 빠져있을 때라 가볍고 빠르게 휙~하고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뭐 지금도 가끔 그렇게 책을 읽는 날이 많지만. 하지만 황선미란 이름은 나에게 각인되었고, 이 신간에 눈길이 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 신작은 아니다. 이미 두 차례나 나온 적이 있다.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하니 그 책들에는 그림까지 실려 있다. 재밌는 것은 같은 출판사인데 그림을 그린 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출판사가 바뀌면서 그림이 빠졌는데 어떤 이유가 있는지 조금 궁금하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발이 삽살개인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그림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이런 그림들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전에 헌책방 순례 당시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산 책들 중 한 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시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장소도 분명하지 않은 시골 마을이 무대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가 살았던 평택집이 무대인 것 같은데 이런 공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장발은 고물상을 하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장발은 그 할아버지를 목청 씨라고 부른다. 장발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검은 색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다름이 목청 씨가 이름을 붙어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힘이 약하고, 다른 형제에게 치여 어미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젖을 먹지만 형제들과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한다.
이야기는 한 암컷 개가 태어나서 자라고, 강아지를 낳고, 죽을 때까지 과정을 다룬다. 이 과정 속에서 장발을 놀리는 늙은 고양이도 나오고, 장발과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는 목청 씨가 있다. 장발의 일생을 통해 우린 아주 현실적인 시골개의 모습을 본다. 강아지가 태어나면 그 새끼를 팔고, 씨어미가 될 개만 남겨두는 평범한 과정이다. 물론 복날에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은 이 소설 속에서는 빠져있다. 개장수가 집주인 몰래 약을 탄 고기로 던져주고 개들을 실고 달아나는 장면은 장발의 활약 덕분에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마지막에 장발이 물고 온 신발 한 짝은 하나의 복선이 된다.
강아지들이 이빨이 간지러워 목청 씨 손자의 새 신발을 물어뜯는 것이나 약친 먹이를 먹고 죽는 것 등은 이전에는 그렇게 낯선 모습이 아니다. 집밖으로 나가 마을을 돌아다니고, 동네 개와 싸우고, 새끼를 밴 후 이 새끼들이 팔려나간다. 새끼들이 팔려갈 때마다 장발은 구슬프게 운다. 시골 마을에서 이 개들은 우리가 요즘 말하는 반려견이니 애완견이니 하는 것과 달리 하나의 자산이다. 태풍에 지붕이 날아갔을 때 목청 씨가 내뱉은 말에 이것이 아주 잘 드러난다. 물론 오랫동안 같이 살다보면 자산 이상의 감정이 쌓이지만 현실은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강아지 한 마리의 일생이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감정들은 그 이상이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거칠게 저항하는 모습들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우리 또한 운명이니 하면서 이렇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장발의 대단한 모험을 다루지도, 목청 씨와의 진한 관계를 파고들지 않지만 그 일상과 현실이 어느 순간 쌓이고 쌓여 마지막 장으로 오게 되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오래된 친구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큰 울림으로 울리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진한 여운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