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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평점 :
일상을 다룬 만화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블로그에 연재한 것들이다. 상당히 유명한 블로그라고 한다. 자기 주변에 재밌는 사람을 유난히 많이 만난 사연이 있어 이것을 간단한 이야기로 엮은 것이다. 실제 작가는 18년 동안 일기를 꾸준히 썼다. 이 기록들이 바탕이 되었으니 현장감은 충분하다. 읽다보면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하는 놀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도 이런 비슷한 사람 만난 적이 있지’ 하고 느낀 적도 꽤 많다. 다만 나의 기억은 부정확하고, 휘발성이라 금방 사라진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11개 장으로 나누었는데 시간 순서와는 상관이 없다. 자신이 경험한 부분 별로 편집했다. 그 중에서 여행 편은 그곳에 가서 만나고 경험한 일을 주로 다루었다. 어린아이 편을 보면서 작가는 재밌다고 했지만 실제 아이들의 시각은 상당히 창조적이다.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데 실제 현실은 아이의 인식 너머에 있다. 대표적인 것인 펭귄이 생선을 먹는 장면이다. 일상에서 아이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이런 표현법에 상당히 놀란다. 어쩌면 굉장히 사소한 것 같은 것들을 작가는 일기에 기록했고, 이 기록들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솔직히 여행 편은 관심이 많이 갔지만 재미는 조금 떨어졌다. 타이완 여행 편에서 한자를 안다고 생각하고 갔다가 무슨 음식인지 몰랐다고 한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자를 안다고 음식을 아는 것은 아니니까. 지우펀을 사진으로 보면서 최근에 바뀐 풍경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떠밀려 다니는 장면이다. 예전에 대만 갔을 때 이곳을 갔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이곳을 보면 늘 따라다닌다. <테르마이 로마이>를 보다가 중단했는데 이 책을 읽고 검색하니 완결되었다고 한다. 반갑다. 사실 이 만화를 보면서 온천에 대한 환상이 조금 생겼었다. 결국 가까운 온천도 가지 못했지만.
공감대를 가장 형성하는 장은 역시 체육관 편이다. 어딘가 노인들이 많은 곳에 가면 괜히 친한 척을 하면서 말을 붙이는 노인들이 있다. 그들의 선의는 어느 순간 반복되고, 그들이 던지는 소소한 정보는 생각보다 솔솔하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 때 약간 불편하지만 떠났을 때 아쉬움을 표현한 장면은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한 사람들이 나온 것은 역시 쇼핑 편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인지 아니면 그 당시만 일반적이지 않은 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지만 놀랍고 신기하고 재밌다. 패밀리 세일에서 일어난 반전은 예상을 뛰어넘고, 그 후일담에 대한 상상은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 편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심야 케이크가게가 열린 이유를 보면서 왠지 씁쓸했지만 왠지 이해가 되는 것을 왜일까? 주정을 부리는 아저씨가 보여주는 반전 매력은 또 어떤가? 말실수를 다루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나 자신도 이런 경우가 많다. 성희롱하는 아저씨를 볼 때 따끔하게 혼내지 못한 작가에게 작은 위로를. 핀셋으로 귀파기라니 혼자 이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먼저 생긴다. 뭐 병원에 가면 실제 핀셋으로 귀지를 파주지만. 가끔 어떤 지역을 가면 왠지 알 수 없는 일이 우연히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길가 편은 그런 일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유카타를 입을 때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일까? 노인의 자전거 뒤편에 숙녀 포즈를 양복을 입고 탄 이들의 정체는 또 뭘까? 이렇게 이 짧은 만화는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 만화의 그림체는 사실 나의 취향과 조금 멀다. 어릴 때는 이런 그림체가 좋았는데 이제는 너무 예쁘게 그린 것이라 왠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떨어진다. 실제 이 만화 속 젊은이들은 모두 예쁘고 잘 생긴 반면 아저씨 아줌마 이후는 일사에 더 가까워진다. 최대한 비슷하게 그렸다고 하지만 그런 절세 미남 미녀가 주변에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질투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체가 취향에 맞지 않다고 내용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 자세히 보면서 반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 책 제목과 간단한 내용을 보고 가족과 친구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녀가 일상에서, 여행에서 잠시 만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