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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카멜레온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초기작들을 좋아한다. 아마 장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아닌 것을 깨닫고 약간 실망한 적이 있기에 초기작을 더 많이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작가 생활 10주년 기념작이자 대중적 요소가 강화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을 읽고 초기작을 떠올렸다. 결과만 말하면 그 당시 작품 성향과 많이 다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문장 등은 내가 기억하는 초기작보다 훨씬 좋지만 초기작들의 강렬함은 조금 떨어진다. 특히 시작하는 부분이 조금 흡입력이 개인적으로 약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쉼 없이 달렸다.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울컥하게 만들었다.
라디오 디제이인 기리하타는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이것이 문제가 되어 등교 거부를 하기도 했다. 이때 그의 친구가 라디오였다. 처음부터 디제이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그를 이 길로 인도했다. 반면에 목소리와 달리 외모는 볼품없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처음부터 나온다. 이 외모 콤플렉스가 그의 단골 바 IF에 찾아온 미지의 여성을 속이게 되고, 이 속임수가 들통나면서 괴상한 작업에 그를 비롯한 IF의 단골들이 끌려들어간다. 처음에는 영문도 몰랐지만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그 미지의 여성 미카지 케이의 복수극이다.
케이가 바 IF에 들어와서 처음 한 말은 코스터였다. 컵받침으로 알아듣고 바의 코스터를 내줬는데 힐끔 보고 다시 나갔다. 그런데 이 바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가 말한 코스터가 다른 단어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말한다. 죽였다는 비슷한 발음의 일본어다. 밖을 내다보니 어디에도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착각일까? 다음날 그녀가 다시 와서 코스터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는 것이 취미라고 말하면서. 그러다 기리하타의 목소리를 듣고, 옆에 앉은 게이바의 남장 여자 레이카의 외모를 보고 설레발을 친다. 생각한 그대로의 외모라고. 기라하타는 레이카에게 대역을 시키면서 케이를 속인다. 이렇게 행동하게 된 속내는 당연히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픈 연기와 상황은 금방 케이에게 들통난다. 덕분에 이 바의 단골들은 케이가 꾸미는 작전에 동원된다. 이시노자키는 선글라스 하나로 조폭 같은 외모를 풍기고, 기리하타는 알 수 없는 유니폼을 입고 이 작전에 동원된다. 한 명은 쫓는 역할, 한 명은 쫓기는 역할이다. 이 작업 중에 대상자가 차에 치일 뻔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 장면을 보고 다시 그녀가 처음 등장하면서 한 단어가 코스터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누군가를 죽이거나 위협을 가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작전까지 계획된다. 평범한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그녀의 사연을 들은 단골들은 적극적으로 돕는다.
케이를 둘러싼 작전이 하나의 중요한 축이라면 다른 하나는 기리하타의 라디오 방송이다. 그는 사연을 읽어주고, 그가 들은 이야기를 각색해서 이에 대한 답변을 해준다. 그가 IF에서 경험한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해서 방송할 때도 있고, IF의 단골들 사연을 각색해서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읽으면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사연들은 작은 쉼터 역할을 한다. 물론 거짓인 경우가 더 많지만 이런 작은 거짓말은 늦은 밤 방송 청취자들을 위로해준다. 34세 모태솔로 기리하타의 숨겨진 재능이 꽃피운 경우다. 이런 작은 거짓말들은 작품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크게 폭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진실이 밖으로 드러난다. 이 장면 때문에 앞의 이야기와 상황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투명 카멜레온은 실재한 카멜레온이 아니다. 친구가 가진 카멜레온을 보고 기리하타가 상상한 카멜레온이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거짓말들은 이것을 대변한다. 마음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보여준 행동과 반응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덮으면서 이런 반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떠올리니 강하고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몇몇 장면에서는 웃음을 던져주고, 어떤 장면은 안타까움을, 약간의 어설픈 계획과 액션에서는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기리하타의 동정은 어떻게 될까? 중늙은이의 호기심을 쓸 데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