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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 허균에서 정약용까지, 새로 읽는 고전 시학
정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평점 :
조선 후기 여덟 시인의 시론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책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허균,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을 넘어 이용휴, 성대중, 이옥까지는 알겠지만 이언진은 낯설다. 이 낯설음 탓인지 아니면 다른 시인 이야기에서 많이 나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가 많이 나온다. 시론을 다루면서 시인의 시가 한 편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정민의 글에 의하면 요절한 천재 시인이다. 아직도 시를 잘 모르는 나를 생각하면 이언진의 시가 지닌 매력을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론들은 모두 ‘나’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목소리로 낸다. 이 중에서 제일 이 부분을 강하게 표현하는 인물이 이용휴고, 정약용으로 넘어오면 원론적인 인간 공부로 넘어오면서 더 딱딱해진다. 책 전체가 분량이 많지 않고, 한 시인의 시론을 간략하게 다루다 보니 진중하게 앉아 집중하면서 읽어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의 시론 원문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저자의 이해로 풀이하는 방식이다. 이전 같으면 원문의 한자를 조금 해석해보려고 노력을 했을 텐데 점점 이런 노력이 사라진다. 당연히 한자 실력은 퇴보한다.
시 책을 읽다 보면 여덟 시인의 개성들이 간간히 보인다.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언진이다. 역관에 비교적 젊은 그가 박지원의 호된 비평에 폭사했다는 글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울분을 조금은 이해한다. 그의 시가 지닌 재능을 염려한 선배의 에두른 비평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사후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따로 글로 지었다는 것을 보면 선배들이 그의 죽음을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아내가 그가 불 속에 던진 원고를 일부 건졌다는 이야기는 재밌는 에피소드다.
이용휴가 ‘나는 나다’라는 제목을 만들었다. 자신의 시를 짓겠다는 시인들의 시론을 읽다 보면 결국 그들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덕무와 박제가의 이야기는 서로 대비된다. 어린이와 처녀처럼 시를 짓고 싶은 이덕무의 순실함과 문체반정에 살짝 반격하는 박제가의 글은 개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성대중이 이언진의 병문안했을 때 부귀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사실 이 부분은 자신들의 생각을 토론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옥이 남녀의 정을 다룬 <이언인>을 내면서 고금의 시 형식들을 끌고 와 풀어낸 것은 그 시대의 완고함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정약용의 시는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이 한 편 있다. 전문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풍경을 잘 대변하는 그 유명한 <애절양>이다. 학창 시절 한문으로 이 시를 풀이해줄 때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강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어릴 때는 화려한 수식어에 눈길이 갔는데 이제는 그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간다. 며칠 전 읽었던 백석의 시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남북 분단 이후의 시들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던가.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자신만의 표현으로 시를 지을 때 그 시가 더 빛나고 진정성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책은 나 자신이 좀 더 공부하고 읽는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