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창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니발 렉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자 중 한 명이다. 영화로 나온 두 편에서 그가 보여준 섬뜩한 느낌과 무시무시한 행동들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두 편 모두 원작 소설에서 이미 존재감을 드러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영화다.
이번에 작가는 무시무시하면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살인자 렉터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보낸 어린 시절과 어떻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니발 렉터로 진화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겪은 어린 시절의 불운과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사건이 어린 그의 세계를 어떻게 산산조각 내었는지 보여주며 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말한다.
사실 한니발 렉터에 대한 기억이 지금은 많이 약해졌다. ‘양들의 침묵’이나 ‘한니발’에서 나온 그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지금은 세부적인 사실들을 많이 잊고 있다. 특히 ‘한니발’의 경우는 영화만 보았지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몇 가지 강한 이미지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불행과 레이디 무라사키를 만나 성장하는 시점과 마지막 그의 냉혹하면서도 잔인한 복수로 말이다. 어린 시절 소위 말하는 영재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여동생을 사랑하면서 자라지만 2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마지막 희망이자 사랑하는 여동생을 악당들에게 먹히는 순간 이전의 그는 사라지고 만다.
삼촌에 의해 고아원에서 벗어나고 레이디 무라사키를 만나 성장하는 부분은 그의 숨겨진 마성(魔性)이 조금씩 각성하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봉인하고 현재 즐거운 생활을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잊고 싶은 기억에 의한 것이다. 최초의 살인에서 보여주듯이 그는 이제 조금씩 감성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숨 가쁘게 정신없이 그에 동조하면서 동시에 순간순간 섬뜩함을 느끼면서 전범이자 한니발을 괴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이 된 악당들과의 대결은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는 냉정하면서 잔혹한 행동은 몇 번의 행운도 있지만 그의 침착하고 무감각한 듯한 감정의 도움이 더욱 크다. 이 복수극에 동의를 하면서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악당들 전력 때문일 것이다.
멋지고 매력적인 일본 여성 레이디 무라사키가 한니발에게 안정과 평온함을 전해주는 여성이지만 또한 그녀가 우리가 아는 한니발로 진화하게 하는 요소들 중 하나다. 최초의 살인이나 마지막 대결에서 그가 보여준 감정들의 파편은 상당한 차이가 있고 비로소 괴물로 변화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러운 점 중 하나는 전후 전범이나 비시정권의 부역자들에 대한 프랑스의 철저한 처단과 집요한 추적에 있다. 현대사에서 그와 같은 행위가 주는 의미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이런 행위는 미군정의 편의 등에 의해 가로 막혔고 친일파 등이 재집권하면서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는 모순을 야기하였다. 그래서 우리에게 역사 바로 세우기나 친일파 등과의 대결은 언제나 잊혀져 가고만 있다.
소설 외에 아쉬운 점은 번역 및 주석과 요즘 많이 보이는 페이지 늘이기 때문이다. 마사무네 도노처럼 번역을 생략한 부분이 눈에 띄는 것과 주석으로 도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빠져 있는 것이다. 페이지 당 20줄로 간격을 넓히고 책을 괜히 두껍게 하는 것은 가격 상승 목적 외에 생각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와중에 느낀 약간의 안타까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