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잊어버린 것 - 마스다 미리 첫 번째 소설집
마스다 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마스다 미리의 첫 번째 소설집이라고 한다. 얼마 전 그녀의 만화를 처음으로 완독했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 소설집을 운 좋게 읽었다. 만화와 달리 소설은 세부 묘사가 가능해 심리 표현이나 상황 등을 더 세밀하다. 어떻게 보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 더 줄어들지만 그만큼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만화로도 이것이 가능하지만 간결한 만화로 섬세하고 여운이 남는 만화를 그린 그녀에게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만의 착각일 수 있지만 이 부분이 그녀의 만화와 소설의 차이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 단편집의 몇 편은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야한 장면을 연상하게 만드는 묘사가 몇몇 보인다. 노골적인 제목의 <섹스하기 좋은 날> 같은 경우 예상한 수위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표제작 <5년 전에 깜빡 잊어버린 것>이 더 야하다. 관능을 소재로 쓴 글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섹시함을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아슬아슬한 남녀의 줄다리기가 더 눈에 들어온다. 뭐 모든 화자가 여자이다 보니 상황보다 감정과 분위기에 더 집중한다. 다 읽은 지금은 화자를 남자로 바꾸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더 생긴다.

 

<5년 전에 깜빡 잊어버린 것>은 반전을 먼저 말하면 복수극이다. 잘 생긴 직원을 5년 만에 만나 바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생각보다 농도가 진하다. 노골적인 대화와 은밀한 유혹이 들어가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잘 쓴 미스터리 같은 재미가 있다. <두 마리의 새장>과 <문>은 일탈에 관한 내용이다. 한 편은 불륜을 저질렀고, 다른 한 편은 그 앞 단계에서 멈춘다. 그들에게 상대방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일상의 탈출이다. 이것을 잘 풀어낸 단편이 바로 <섹스하기 좋은 날>이다. 그녀의 마음이, 행동이 대부분 불륜을 저지르는 남녀들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데니쉬>는 연상 여성의 작은 친절에 빠진 순진한 20대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자는 제빵사의 탄탄한 팔뚝에 매혹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갈 마음이 크게 없다. 감정은 자신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쩌면 이 둘 모두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스코비>는 대학 졸업 후 취직하지 않고 부모집에 눌러 사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특별한 일탈이나 불륜도 없이 삶의 한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둑길의 저녁노을>은 제대로 된 초밥집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부부의 작은 이야기다. 싼 스시가 넘쳐나는 일본을 생각할 때 의외의 장면이다. 뭐 한국의 경우 좋은 한정식집에 한 번도 못 가본 사람들이 넘쳐나겠지만.

 

<각설탕 집>은 자신들의 집을 지으려는 부부 이야기다. 집을 짓고 대출금을 평생 갚는 현실을 생각할 때 올바른 선택일까? 발로 뛰면서 그 대지를 둘러보는 그들을 보면 좋은 집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버터쿠키 봉지>는 고객센터 직원 이야기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지만 이것 또한 잘못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생기는 감정의 소모는 쉽게 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쌍둥이바람꽃>은 지나간 삶의 한 장면을 말하는 순간 인고의 시간과 제목의 꽃이 겹쳐진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만화로 이어지는데 엄마를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에 나도 공감한다. 엄마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와 의미는 내 삶만큼 무겁고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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