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맨
김펑 지음 / 마카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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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시를 준비한 적이 없다. 공무원 시험도 준비한 적이 없다. 하지만 신림동과 노량진은 자주 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는 선후배가 그곳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사시나 공무원 시험이나 CPA 시험을 준비했었다. 그 중 몇 명은 합격했고, 그 나머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장면들이 그들이 모습과 겹쳐 보였다. 요즘 불안정한 사회 환경 속에서 공시생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은 사시를 준비하는 6수생 현우를 통해 그 시절 삶의 풍경과 그들이 가졌던 희망과 집착을 보여준다.

 

고시맨. 현재 우리는 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벤져스와 저스티스리그만 해도 얼마나 많은 맨들이 나오는가. 솔직히 말해 나도 이런 맨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시맨이라니! 뭐지? 또 미스터 앤서는 또 뭐야? 신림동 고시촌을 다룬다고 하길래 쩐내 나는 고시생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작가는 신림동 고시촌에 영혼이 묶인 고시생들을 도와주는 고시맨과 그에 대적하는 미스터 앤서라는 설정을 통해 그 시절, 그 동네의 삶을 들여다본다. 밖에서 제3자가 그들을 볼 때 불쌍하고 미련하다. 하지만 합격자가 나오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희망이 싹틀 때 그들의 영혼과 삶은 그곳에 더욱 강하게 묶인다.

 

표지와 고시맨이란 설정만으로 이 소설이 아주 무거울 것이란 예상은 하지 않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먼저 했고, 일정 부분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속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액자 구성인데 이 둘은 나중에 하나로 이어진다. 읽으면서 나의 시선을 강하게 끈 것은 고시맨이나 현우가 발견한 노트 속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미스터 앤서다. 어느 날 나타나 고시촌의 희망 전도사이자 하나의 아이콘처럼 자란 그의 모습은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아쉬운 것은 작가가 이 미스터 앤서의 존재를 부각시키기보다 오히려 축소한 것이다. 그의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과 몰락은 약간 뜬금없는 느낌이다. 신림동 고시촌의 허상과 환상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현우가 주인공이다. 그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의 원래 희망은 오지 여행가다. 부모의 기대가 그를 고시원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이후의 삶은 그가 스스로 그곳에 자신을 묶는다. 몽유병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과 현실의 집착이 충돌한 결과다. 성문고시원 총무 안선주는 권력의 대리자로 현우를 괴롭히는 악당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바로 <IQ350>이라는 노트 속 이야기다. 한 인물의 간단한 인생사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결국 고시맨의 탄생을 다룬 비록이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다.

 

합격에 목을 매고, 합격의 희망을 놓지 못하는 고시생에게도 자살의 위험은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세 번 정도 나오는데 이때마다 고시맨이 출동한다. 그 극단적 선택은 희망 고문이 자신을 밀어붙일 때 일어난다. 희망의 끝은 절망이다. 자신이 진실로 바란 선택이 아니기에 이 희망은 더욱 힘들다. 현우의 몽유병도 그렇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고시맨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의 동네 전설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그는 존재한다. 위험한 순간 나타났다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사라진다. 아미고 고시원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한다.

 

어떻게 보면 무겁고 어둡기만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작가는 이 무거운 현실을 가볍고 재밌는 글로 풀어내었다. 덕분에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고시원에서 쫓아내려는 총무와 그곳에 버티려는 302호 현우의 대결이 숨겨져 있던 이야기로 분위가가 바뀔 때 조금 무거워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무거움을 계속 안고 갈 마음이 없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 에필로그다. 고시 밖의 삶을 보여주고, 다른 선택이 진짜 자신이 원한 선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작은 바람이 작은 날갯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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