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하루 일기
마스다 미리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면서 마눌님의 십대 이야기가 가끔 떠올랐다. 아마 이 글을 쓴 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할지도 모른다. 잠시 자신의 소녀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길 바라면서. 다른 시대와 나라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공통점이 별로 많지 않겠지만 십대 소녀라면 공감할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 만화고, 분량이 많지 않아 공감하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전의 경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한국 중년 남성의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하루의 생각 중 몇 개는 십대의 나도 한 것들이다.

 

마스다 미리. 한때 카페 등에서 그녀의 이름을 자주 봤다. 덕분에 마일리지 등으로 몇 권을 사놓았다. 늘 있는 일이지만 그냥 묵혀뒀다. 만화의 경우 금방 읽을 수 있는데도 다른 책 때문에 뒤로 밀렸다. 사실 책을 살 때만 해도 이 작가의 작품이 어떤 성향인지 몰랐다. 그 당시는 한참 장르 문학 등에 빠졌고(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일상의 소소함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다. 아마 여성 독자들의 칭찬에 무턱대고 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때 산 것이 잘 한 행동이지만 한동안은 그때 사지 않은 다른 책들이 더 아쉬웠다.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읽었다. 기억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예전에 읽었던 만화나 에세이에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스다 미리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미리를 ‘마리’로 기억한 적이 대부분이다. 아마 잘못된 이름의 기억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계속해서 이 미리의 책을 읽고 이름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이 나왔다고 하거나 서평이 올라오면 찰떡같이 알게 된다. 이것만 보면 이름 난독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잘못 읽고, 잘못 불러 큰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다 보니.

 

소개글에서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모두가 지나왔지만 이미 잊어버렸던 바로 그때 그 시절 우리 모두의 이야기’란 문구다. 남자인 내가 십대 소녀의 기분과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마는 나도 십대를 거쳤지 않은가. 작가의 십대 시절을 엿보고 싶은 마음과 지금 십대의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코하루 일기를 시작하는 대목에선 한때 열심히 일기를 쓴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 일기장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알 수 없고, 예전에 다시 읽었을 때는 몇 가지 단어 등은 전혀 알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알 수 있으려나? 하지만 코하루의 일기는 그 시대만의, 그녀들만의 용어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열다섯 소녀가 고등학생을 지나 스무 살 전날 밤까지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내용들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고 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했다. 솔직히 말해 잘 그린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부족한 그림을 내용이 충분히 채워준다. 예전에 이런 그림이 별로인 만화를 싫어해 읽지 않았다가 내용에 반해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림보다 내용에 더 눈길이 간다. 물론 내용에 빠져서 그림의 훌륭함을 잊는 경우도 있다. 뒤늦은 감탄을 자아낸 적이 적지 않다. 언젠가 마스다 미리의 그림을 보고 감탄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짝 엿보기와 공감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왕따 이야기에 놀란다. “이야기 중에 갑자기 시작되는 이곳에 없는 아이의 ’단점 이야기‘. 가벼운 시작이 예기치 못한 왕따로 발전한다는 것. 학교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배운 것.“ 놀랍고도 슬픈 현실이다. 이런 성찰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코하루의 상상은 학교와 교육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어른이 만든 것을 받았을 뿐이야.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어.“ <5교시>의 상상은 그냥 상상만은 아니다.

 

“엄마는 엄마로만 있어주면 돼. 왜냐면 엄마는 나랑 언니만의 엄마니까.” 이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마음 뒤의 현실을 알고 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그녀도 한 명의 여자이고 싶다는 것을.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 수많은 부모의 모습들 중 하나다. 읽다 보면 이 생각을 십대에 했던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있다. “아빠와 엄마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고. 언젠가 아빠랑 엄마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가족’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지”라고 언니가 있어 다행이란 표현에 덧붙인 내용이다. 남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릴 때 추억 이야기를 많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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