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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울다
거수이핑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9월
평점 :
이야기 넷을 담고 있는 중편집이다. 이 중에서 표제작인 <산이 울다>는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중편집에 실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생활한다. 마지막 작품인 <시간을 넘어>만 현대의 시간을 직접 다루고 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전에 읽었던 중국 작가의 시골 풍경이 이 작품 속에서도 느껴졌다. 순박하지만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과 작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 말이다. 위화나 모옌의 작품 속에서 느낀 것과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르다. 아마 이 네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삶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산이 울다>는 한 산마을에 라홍 가족이 이사 온 후 생긴 일을 다룬다. 여자 홍샤는 예쁘지만 벙어리고, 가족은 구걸을 하면서 산다. 마을 청년 한충이 살 곳을 내줬는데 오소리를 잡기 위해 설치한 폭발물에 라홍이 죽는다. 마을 간부는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한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홍샤 등을 돌보고 배상해야 한다. 한충에게는 내연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한충을 이용만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틀어지고, 홍샤의 비밀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어처구니없지만 참혹한 과거 이야기는 평범한 듯한 이야기에 한 인간의 숨겨진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뒤로 가면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하늘 아래>는 긴 세월을 다룬다. 롼친이 항일전쟁 당시 무장대 리만탕을 구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수십 년이 흐른다. 남편 훠창뤼는 은전을 벌기 위해 일본인들의 내기에 발을 내딛는다. 이 때문에 돈은 벌지만 몸이 망가진다. 리만탕은 차용증을 쓴 후 은전으로 식량을 구해 돌아가고, 훠창뤼가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그녀의 친정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돈이 있다는 소문은 빌려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지지만 실제 그들 손에 돈이 없다. 비난만 가득하다. 그들은 이후로도 평범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재밌는 대목들은 리만탕이 성의 높은 지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려는 그녀를 말리는 마을 간부들이다. 문제 거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함축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마지막 리만탕소학교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채찍돌림>은 읽으면서 불길한 예감을 품게 만든다. 한 편의 추리소설과도 같다. 왕인란의 남편 마우가 고환 두 쪽이 묶인 상태로 죽고, 이후 결혼한 남편마저도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기구한 운명이다. 이런 왕인란의 곁에는 마우의 종이었던 테헤이가 있다. 테헤이는 왕인란이 마우의 둘째 부인으로 올 때부터 관심을 둔 인물이다. 마우가 인민재판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사실 마우는 열심히 노력해서 재산을 모았지만 지주라는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출신성분은 그 가족에게도 이어진다. 이런 시대상과 더불어 하나의 무서운 욕망이 삶에 끼어든다. 예상한 것처럼 잔혹한 행위는 없지만 의도는 잔인하다. 마지막 장면은 채찍돌림처럼 큰 울림을 전해준다.
<시간을 넘어>는 딸의 실종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린 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열여덟 살의 리리다. 이 딸의 실종은 쑤홍 가족에 많은 문제를 불러온다. 리리가 남편 야오량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과 쑤홍이 도시에서 몸을 판 것이다. 여기에 도시에서 발견된 조각난 사체의 주인이 리리일 줄 모른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이야기가 풀려가면서 나오는 쑤홍의 과거와 리리의 도시행은 살짝 닮은 모습을 가진다. <산이 울다>의 홍샤가 겪었던 일도 리리와 이어진다. 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비극들이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쑤홍이 선택한 문제 해결은 현실 도피다. 자신이 만든 환상 속 세계다. 이곳이라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리콴청의 생각은 남자의 또 다른 현실 도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