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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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소설 속에서 나오는 고시원의 풍경은 방송으로 본 것이 전부다. 공간의 크기만 놓고 본다면 학창시절 나의 하숙방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에 둘이 있었고, 다른 하숙방의 형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좁은 방에 둘이 있지만 밖이 열린 공간이다 보니 그렇게 답답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고시원은 한 평이란 좁은 공간에 많은 집기를 넣어놓았고, 열린 공간이 없고 다른 방 사람들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 이 익명의 공간은 사람들을 점점 고립시킨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멋진 장르 복합물을 만들어내었다.

 

303호 홍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316호 외국노동자 깜과 311호 취업준비생 편, 311호 아저씨 최, 317호 소녀 정으로 이어진다. 이 사이 사이에 비정성시를 패러디한 비정묘시가 들어가 있고, 이 이야기 속 고양이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려준다. 그리고 고문고시원의 유래를 설명한 첫 이야기와 맞물리는 마지막 유령들이 등장한다. 각 방의 화자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 각각의 장르가 드러난다. 공포, 추리, sf, 무협, 스릴러, 액션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 연결이 상당히 부드럽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는 기묘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부분이 몰입도를 높인다.

 

고시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증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창문이 있으면 월세를 3만원 더 내야 한다. 이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이 닫힌 공간이 그들의 절박한 환경과 맞물려 더욱 폐쇄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작은 관심이 어느 순간 이 고시원이 완전히 닫힌 곳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것을 가장 잘 알려주는 인물이 바로 303호 고시생 홍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문고시원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를 깨트리는 첫 발자국을 내딛는 다. 외로움에 지친 그녀가 귀신과 대화를 하고, 옆방에 관심을 두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316호 깜은 외국노동자다. 한때 개그프로그램에서 흔히 하던 말을 그는 수시로 내뱉는다. ‘괜찮아요.’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기에 아파도 힘들어도 이 말을 낼 수밖에 없다. 그가 초능력을 얻게 된 과정도, 이 초능력으로 사람을 구했을 때 보인 사람들의 반응도, 그의 신상이 털려 인터넷 개인방송에 이용당할 때도 그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자 피해자였다. 이런 그에게 고시원의 작은 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휴식처다. 이 고시원에 대해 휴식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명 더 있다. 311호의 매일 죽는 역할을 맡은 최와 317호의 킬러 소녀 정이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상황은 다르다. 그렇지만 이 고시원의 공간이 주는 평온함은 같다.

 

313호 편은 무협을 사랑한다. 아니 협객을 동경한다. 이것이 취업실패의 주요 원인이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였던 도서대여점 사장을 만나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위한 비법을 전수받는다. 무협의 단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무협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면접을 보고, 최종 단계까지 마친 그가 마주한 것은 너무 강력한 신공이다. 지인소개, 낙하신공. 311호 최는 빚을 지고 자살한 것처럼 꾸민 후 사라졌다. 그런데 시체가 없다 보니 그의 부채가 남은 가족에게 전가되었다. 아내의 전화 한 통은 실종자에 노숙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트레스 해소방에서 매일 죽는 연기를 한다는 것은 그의 실제 삶과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를 죽이는 방식과 동일한 실재 사건을 마주한다.

 

317호 정은 소녀 킬러다. 킬러였던 아버지에 의해 킬러로 키워졌다. 그녀는 알바를 하면서 열심히 사는데 그녀의 이력을 아는 사람이 다가온다. 그녀의 살인은 도시 전설처럼 퍼진다. 그러다 한 무당의 살인 의뢰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꼬인다. 그 무당은 죽어야할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당을 구하기 위한 그녀의 활약은 한 편의 액션영화와도 같다. 이런 각 방의 사람들이 모여 위기에 빠진 고시원과 그 일원들을 구하려고 한다. 그 적은 뱀 사나이, 얼음장, 괴물 등으로 불린다. 여기에 고시원에 살고 있는 유령들이 합세했다. 장르 복합적인 이야기는 어느 순간 거대한 적과 마주하고, 각각의 인물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어두운 현실에서 이들의 연대는 작은 빛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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