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역 폭발사건
김은미 지음 / 제8요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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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광고 문구로 나를 유혹했다. 재일 조선인의 후예 코헤이와 제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일미회와 일본 생체 실험의 생존자이자 윤동주의 연인 강복순을 둘러싼 추격전이란 설정이다. 이 설정은 소설 속에서 그렇게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실제 기대했던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후반부에 갈수록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아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광고에 나온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뺀다면 더욱 그렇다.

 

인적이 드문 어두운 새벽 신주쿠역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일본 경찰은 이 폭발물을 둔 인물을 금방 잡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다. 그는 돈을 받고 그곳에 놓아두었을 뿐이다. 당연히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몰랐다. 이 작은 사건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한 결말이다. 왜 이 폭발사건이 일어났는지, 이 폭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등이 펼쳐진다. 그리고 시간은 한 재일조선인 소년 코헤이의 과거로 넘어간다. 중학생 때 반 친구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고 차별받고, 외톨이처럼 보내다가 재일한국인들과 어울려 지낸다. 이때의 만남이 잠깐 친구를 만들어주지만 이 만남이 계속 지속되지는 않는다. 조용히 사라진다.

 

코헤이의 어머니는 재일조선인이다. 이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한 통의 우편이 도착한다. 준영이란 이름으로 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어딘가로 떠난다. 부모님이 떠나기 전날 코헤이는 예지몽을 꾼다. 부모님이 차 사고로 돌아가시는 꿈이다. 그리고 실제 이들은 차 사고로 죽었다. 부모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세상과 떨어져나가게 만든다. 친구들과도 멀어진다. 그러다 한 번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일이 생긴다. 바로 윤하다. 윤하는 자매학교 행사 때문에 일본에 왔다. 코헤이는 윤하에게 바로 돌아가라고 쪽지를 보낸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온 그녀가 쉽게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날 밤 지진이 일어난다. 그녀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코헤이가 도와준다. 다른 나라와 환경은 몇 번의 메일과 편지를 오고 가게 만들지만 어느 순간 시들해진다.

 

코헤이와 윤하가 현재를 보여준다면 복순은 과거를 알려준다. 일제의 토지개혁으로 인해 농지를 잃고 만주에서 땅을 개척하던 부모는 과로 등으로 한 명씩 죽는다. 공부 잘하는 오빠는 그곳에 머물고, 복순은 일본으로 식모살이하러 온다. 여기서 주인 아들의 친구인 동주를 만난다. 동주와의 만남은 복순으로 하여금 민족의식에 눈 뜨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녀가 독립운동에 매진하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다 이들은 모두 일본 경찰에 잡힌다. 소위 내란죄이지만 실제는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두려워한 일제의 무리한 행동이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이 둘의 애절한 사랑이 그려질 것 같았는데 역사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을 부각시키기에는 자료가 너무 없다. 이 이야기는 코헤이와 윤하 이야기 사이에 조금씩 들어간다.

 

현재로 넘어오면 윤하는 한국에 흔한 계약직 직원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 계약 해지되고, 남자 친구에게도 차인다. 그때 코헤이가 떠올라 일본에 온다.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코헤이 입장에서는 민폐다. 그는 사람과 멀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었고, 가업을 다시 시작했다. 간호사 한 명을 두고 동네 병원을 운영한다. 그런데 이 평온한 일상에 윤하가 끼어든다. 예지몽의 불안을 가진 그는 윤하를 자신의 집으로 강제로 데려 오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 문제가 생기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조금 방심하는 순간 윤하가 납치된다.

 

항상 누군가 코헤이와 그의 집을 감시하고 있다. 일미회의 하수인들이다. 한 개인이 일본의 막후 세력을 이길 방법은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신주쿠역 폭발사건이다. 이 사건과 함께 일미회를 압박한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긴박한 상황들이 이어져야 하는데 작가는 너무 느슨하고 일상적으로 풀어간다. 오랫동안 숨겨왔던 복순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녀의 도박이 일미회의 수뇌부 한 명을 압박한다. 이 순간도 역시 큰 긴장감을 불러오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잘 짠 구성과 각 요소에 역사를 녹여낸 설정과 매끈한 문장이 돋보이지만 강한 임팩트가 없다. 코헤이의 액션도 하수인을 잡기 위한 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기대한 농밀한 서스펜스는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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