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길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예상하지 못한 재미와 묵직한 이야기가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전작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압축된 시간이 아닌 한 청년의 요리사 성장기를 다루다 보니 조금 느슨하다. 시간을 가볍게 뛰어넘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그 사이에 요리와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흘러나온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프랑스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분야다. 저임금과 수많은 폭력 등은 작가도 지적했듯이 나쁜 악습이다. 이런 악습이 너무 많은 한국을 생각하면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모로. 그의 성장기를 보면 어릴 때부터 대단하다. 정크 푸드를 먹지 않고, 패스트푸드점에 가지도 않는다. 한창 성장기의 소년들은 모로가 만들어주는 음식으로 자란다. 그들이 낸 돈으로 모로가 음식을 만든다. 푸짐하고 맛있다. 이런 이야기는 그가 바로 요리사의 길로 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는 경제학 공부를 계속한다. 석사를 마치고, 여행을 하고, 음식점에서 알바를 하고, 박사 과정까지 마친다. 그 사이에 자신의 식당도 운영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요리사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야기가 진행될 때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 예측할 수 없다.

 

미식의 세계에서 프랑스 요리는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 만나는 것을 요리가 아니라 제과, 제빵이다. 와인이다. 작가는 요리를 뺀 부분은 그냥 스쳐지나간다. 읽으면서 느끼는 고역이 하나 있다. 바로 프랑스어로 된 음식이나 재료 등이다. 주석이 달렸다고 해도 본 적도, 먹은 적도 없으니 알 수 없다. 상상력으로 이것을 해결하기에는 무리다. 그냥 대충 지나갈 수밖에 없다. 아쉽다. 다시 파리로 가게 된다면 모로가 말한 음식들 중 몇 가지는 먹어보고 싶다. 그 정도 가격이라면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물론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은 다르겠지만 별로 그 식당들은 관심이 없다.

 

모로의 경험과 성장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요리사란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느낀다. 재료를 사서 돌아와 손질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음식을 만든다. 그가 식당을 열었을 때 주방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엄청난 강도의 즉흥적 행위와 아주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감각의 실험을 매일 한다. 재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재료에 집중해요. 재료를 드러내고, 재료에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에요. 가끔 서로 결이 다른 재료들이 어우러질 때 그것들은 입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드러내죠.” 이때만 해도 성공한 요리사가 어떻게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리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될 줄 알았다. 그가 연 식당이 엄청난 호평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확장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힘든 노동과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 일이 그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든다.

 

식당을 접었다고 요리사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제 새로운 요리를 찾아 세계를 돌아다닌다. 방콕과 미얀마를 돌면서 식재료를 더 배우고, 유명 식당에서 요리사를 한다. 아직 자신만의 식탁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런 수행은 그로 하여금 마지막에 놀라운 기획을 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은 요리의 세계가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유명 요리사의 화려한 세계가 아니라 세계 곳곳을 채우는 수많은 생계형 요리사들이 더 눈길을 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친구 혹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표현한다. 간결한 문장과 섬세한 표현은 순간순간 집중하게 만든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