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
티에리 코엔 지음, 박아르마 옮김 / 희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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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의 끝에서 나는 죽을 것이다.” 죽음을 암시하는 이 문장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상하게 만든다. 성공한 작가가 퇴폐적으로 변신하면서 삶의 극단으로 치닫는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이 추측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자기 파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맞지만 그 원인과 과정이 달랐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장면들로 이어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수긍할 수 있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다른 작품과 이미지가 겹쳐졌다. 어떻게 보면 심한 비약일 수도 있는데 작가는 시간을 끌고 들어와서 이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려고 한다.

 

사무엘 샌더슨. 첫 작품이 성공하면서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기로 계약하고 성공가도를 달린다. 첫 작품에 비해 그 다음 작품들은 그의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이미 잘 팔리는 작가가 된 그이기에 비슷한 설정의 작품들을 계속 낸다. 부와 명성이 쌓이고 욕망이 충족되면서 더 많은 욕망에 휩싸인다. 가난한 작가일 때 보여준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은 성공에 도취되는 순간 사라진다. 아내와 딸이 바라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 결과는 이혼이다. 이 이혼이 그의 삶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는다. 이혼 전 불륜의 금제가 깨졌다. SNS 통해 그는 늘 새로운 여자를 사냥한다.

 

베스트셀러 작가란 명성과 좋은 글빨은 그에게 관심 있는 여성을 낚는데 아주 좋은 아이템이 된다. 자꾸 하다보면 그쪽으로 민감해진다. 술과 마약과 섹스에 취한 그는 자신의 소설에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에이전트는 계속 독려하고 독촉할 뿐이다. 예쁘고 어린 애인이 옆에 있고, 수시로 만날 새로운 여인들이 있다. 이런 일상 속에 작은 파국이 생긴다. 기자 한 명을 때리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겪었던 정신병이 떠오른다. 페이스북에 술은 먹은 후 자신과 팬을 기만하는 글을 올려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때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접속한다. 20년 후의 자신아라고 하면서.

 

20년 후의 그가 알려준 정보는 자극적이다. 현재의 삶에 불만이 있는 그를 흔들기는 충분하다. 딸이 마약상들이 다니는 곳에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런 몇 가지 장면만 놓고 보면 SF로 간주해도 될 정도다. 과연 그는 20년 후의 자신일까? 이런 의문은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발견되는 친구의 죽음은 또 다른 장르로 이끈다. 이렇게 소설은 몇 가지 설정을 뒤섞어 놓은 채 빠르게 전개된다. 성공한 작가의 자기 회의가 들어가고, 그를 질투하는 사람이 나오고, 화려한 성공이 주는 달콤한 열매도 빠지지 않는다.

 

출판계의 이면을 잠시 보여주고, 마케팅이 신작 판매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이 부분을 더 깊이 파고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결국 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도달하면 욕망과 질투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년 소설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비슷한 설정을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삶과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상적인 면을 자극하는 소설은 멋진 문장으로 회자될지 모르지만 그 생명력이 결코 길지 않다. 좋은 문체가 있다고 해서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녹아 있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와 긴장감이 이어진다. 그리고 첫 문장에서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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