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이 쓰는 일기도 오랜만에 쓰려고 하면 한참을 아무것도 못 쓰고 앉아있다. 하나 쓰면 어떻게든 다음은 생각나겠지 하고 아무 문장을 하나 써놓고, 다음에 또 아무 생각이 안 나서 멍하니 앉아있다. 


 목요일에 월차를 내고 선생님 두 분을 만나고 왔다. 당일에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생각이 많아 꼭 돌아가서 내용 정리를 하고 일기도 쓰고 마무리를 하고 자야지 생각했는데. 수요일에 감기가 딱 시작해서, 하루종일 비를 맞고 끼니도 거르고 돌아다녔더니 집에 오니 탈진이었다. 간만에 탈진이야. 스스로 알 수 있는 탈진. 평소에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게 퇴근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거구나 이해했다. 


 1시에 투자 선생님과 1시간정도 상담을 받았다. 앞으로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가야할지, 실거주 이사는 어떻게 계획할지, 투자공부 방향을 어떻게 수정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가져갔다. 상담은 기대처럼 늘 명쾌하게. 포트폴리오는 생각대로. 구체적 포인트는 잡아주신대로 때가 되면 실행할 것. 실거주 이사도 생각대로. 투자공부 방향은 수정해서 더 조금씩 천천히 하라는 답. 상담을 신청하고 준비할 때부터, 끝나고 나와서까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구나 새삼스러웠다. 


20년부터면 오래됐네요.

시간은 흘렀는데 자꾸 아파서 실제로 공부에 쓴 시간은 많이 못 넣었어요.

힘들었겠다. 이제부터는 기술을 더 익힌다고 공부가 아니에요. 보유하면서 실력이 더 늘 거에요.


 잡아주신 방향대로 끌어가는 일은 간단하다. 그렇게 당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시간이 흐르면서 내 그릇이 더 커져있을 것. 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2호선 안에서 눈물이 계속 났다. 처음에 똑 똑 떨어질때는 손으로 닦다가 나중에는 포기. 힘들었겠다 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렇지 않았고 괜찮아서 웃으며 함께 얘기했는데. 인생 방향을 틀었던 4년 전부터 평일 오후 서울 지하철에 앉아있던 그때까지를 돌아보는데 눈물바다. 시간이 빠듯해서 내려서 닦을 틈도 없이 환승할때 얼른 화장실에 들러서 콧물을 팽 풀었다. 돌아와서 주말에 언니랑 다시 얘기해보는데 차이점을 알게 됐다. 내가 그때 나를 떠올리며 참 힘들었겠다 해줄 때 눈물이 아직도 왈칵왈칵 난다. 아직도. 그래도 그래서 이렇게나 잘 컸지.


 더풀카드처럼. 아직 월드카드까지 여정을 다 끝내지 못했지만. 타로카드로 지난 4년을 복기하는 글을 써보면 재밌겠다 생각하면서. 신나가지고.


 환승할 때는 바빠서 괜찮다가 버스에 타서 다시 또 눈물바람. 다행히 다음 상담 직전에 진정이 됐다. 4시에는 타로 선생님과 1시간 반정도 상담을 받았다. 타로 상담을 받으면서 상담 코칭과 강의를 같이 해주시는 시간. 덤블도어의 펜시브처럼 카드 3장에서 줄줄이 선생님이 풀어내시는 스토리는 정말 놀라웠다. 투자 선생님은 어떤 방식인지 익숙해서 알아서 오는 대단함, 타로 선생님은 낯설어서 오는 대단함. 초보자답게 당연하게도 키워드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뼈저리게 인지가 됐고, 카드 한 장 한 장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인 이벤트용이나 일정 조정을 위한 수준의 셀프타로에서는 별 문제는 없지만. 선생님 상담 스타일이 나랑 잘 맞고 좋았던 건 같이 해주신 실제적인 조언들. 갑자기 확언을 시켜주셔서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오늘 타로 상담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라며. 나는! 이효리다! ㅋㅋㅋ 이효리 공부 좀 해보겠습니다 하며 집으로. 


 투자시간 줄여서 건강 챙기며 오래 하라는 뜻이셨는데. 시간 세이브 돼서 타로책을 잔뜩 시켰다.


 참, 투자 선생님 만나러 가기 전 재미로 앞으로 3개월 운세를 봐드리려고 미리 카드를 뽑아보고 갔었다. 오랫동안 원했던 곳으로 이사를 하실 거라는 기쁜 소식. 전해드리려 했는데 상담 끝에 최근 이사를 하셨다고 먼저 얘기하셔서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전해드리니 너무 재밌어하셔서 즐겁고, 맞아서 기뻤다. 그러고보니 타로선생님께 가서 물어봤다. 지인들 운을 제가 리모컨으로 혼자 뽑아보는 게 잘 맞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테스트해보니 얼굴, 이름 정도 아는 사람도 작동이 되더라고요. 이게 진짜 작동이 되는 게 맞아요? 하니 맞다고! 헉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해는 안 되지만 몇번이나 반복해서 작동하는 걸 확인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굴을 몰라도 작동한다고! 아무래도 이상한데 그렇다고 한다. 아직 내 카드로 확인은 못 해봤는데. 해보고 싶다. 혼자 뽑아본지 200회가 되어가면서 확인해볼 것도 거의 확인해봤고 더이상 크게 늘지 않는 타이밍이었는데 다시 열정이 활활.


 이번 주 조언 카드는 RELAX. 충분히 여유를 가져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요.

 습습후후. 릴랙스. 

 내 조언카드는 늘 롤러코스터다. 올인하세요-휴식을 취하세요 무한루프. 이번 주는 다시 한김 쉬어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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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덕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2. 집요하다. 3. 찾아낸 아름다움을 다른 대상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세상에 이게 이렇게 너무 아름답고 이상하고 그러지 않냐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변에 같이 그렇다는 사람이 없어서 씩씩대다가 골방에 틀어박혀서 작정하고 그 아름다움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본다. 그리고 차근차근 스크랩하고 정리해가지고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딱 네이버 메인에 걸려가지고. 점조직으로 흩어져있던 덕후들이 댓글에 나타나서 세상에 이걸 이렇게 정리했냐고 이세상 퀄리티가 아니라고 감탄하다가. 메인 소개 다음 턴 글에 묻혀서 다시 조용해진 게시물. 같은 책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을, 메리 셸리를, 과학을 좋아하는데 냄새가 나서 이걸 잘 엮어보면 재밌겠는데? 생각하다가 진짜 재밌게 잘 엮은 책. 메리 셸리를 탄생시킨 시대와 환경을 추적하고,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과학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좋은 번역자까지 만난 좋은 책이었다. 작가의 오류나 착각도 짚어주고, 궁금했던 부분은 먼저 찾아보고 역주로 알려줘 책이나 주제에 대한 애정도 느껴져 정말 정말 좋았다. 그런데 절판되어버려서 안타까워..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속 독성물질을 다루는 전작 [죽이는 화학]보다 더 구성도 좋고 흥미로워보이는데 원작 인지도의 문제일까. 


 괴물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아이디어(스스로 생명을 창조한다는!)를 떠올린 다음 인체 조각 수집, 봉합, 생명 불어넣기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에 필요했던 과학은 연금술과 화학, 라부아지에, 해부학, 표본 보존법, 이식수술, 전기, 갈바니즘 등이다. 항목별로 기원부터 괴물의 탄생 시점의 과학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과학이라고 할 만한 게 대부분 18세기부터 발달하긴 하지만. 특히 해부학 파트의 존 헌터와 관련된 챕터가 제일 흥미진진했다. 존 헌터의 삶과 해부학 컬렉션은 당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봐도 기괴하고 대단하다. 그런데 이 인물에서 지킬앤하이드와 둘리틀박사도 태어나고, 모비딕의 고유파트라 생각한 해부 파트도 영감을 받았다니 온갖 재밌고 신기한게 꿈틀거리는 시대였나 싶다.


 차근차근 책장을 넘길수록 [프랑켄슈타인]은 누가 썼어도 결국 나왔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흐름이 특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작가와 작품은 운명적으로 그 통로가 되는 느낌. 그게 문화나 예술, 과학 분야마다 이루어지는데 시대의 씨줄과 사람의 날줄이 닿는 곳마다 대단한 게 나오는 것 같다. 그 하나를 위한 재료가 다 준비됐을 때. 어떨 때는 시대적 수요에 따라 공급이 만들어지고, 어떨 때는 시대적 공급에 따라 수요가 만들어지면서. 역사가 거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지적인 대화에 노출된 성장환경, 시인이면서 과학에 취미를 가졌던 배우자, 바이런의 연인이 된 동생, 과학쇼가 공연처럼 오락거리인 시간대, 역사적인 화산 폭발까지. 사람의 힘으로 일부러는 어찌 할 수 없는 필연같다. 메리 셸리의 아버지가 퍼시 셸리의 돈을 탐내서 집에 드나들게 하지 않았다면? 메리의 동생이 유혹하려고 맘먹은게 바이런이 아니었다면? 메리가 여행 중 프랑켄슈타인 성 주변을 지나치지 않았다면? 당시 바이런의 여행에 동행한 사람이 의사가 아니었다면? 사소한 한 끗 차이로 [프랑켄슈타인]의 작자는 달라졌을지도.


  작가는 관련된 과학의 재료들을 [프랑켄슈타인]이 쓰인 시점에 대입해보고. 나는 시대적 배경이 공통 분모라면 통로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우선 경험이 있는 사람. 다양한 분야의 경험. 그리고 깊이 사색하는 사람. 또 사색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뭔가 행동하는 사람. 그리고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사람. 


 나에게 가장 부족한 건 끝-까지 해보는 것.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과 같이 해보는 것. [내]가 탄생할 수 있도록 재료를 계속 모아주기. 새로운 재밌는 일에 시선을 뺏기더라도 하던 일로 꾸준히 돌아가서 깊이 생각하기. 결과물을 만들기. 얼기설기 만든 것도 세상 밖에 내놓기. 동시에 걸작 앞에서 감탄하기.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찾아내기. 기록하고 정리하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그 모든 필연적인 우연들로 이런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소비할 수 있어서 감사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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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잠백이 닭가슴살 오트밀죽을 먹었다. 사장님이 요즘 건강식에 도전중인데 샘플로 두개 준 것. 1봉지에 단백질이 25g이라 아침용으로 괜찮겠다 싶었는데 이거 한 팩 먹고 오전에 일할 수 있겠나 싶어 주말에 테스트하려고 기다렸다. 성분은 전반적으로 깨끗한 편이었는데 구성성분을 생략한 '소스1'이 있어 일주일간 수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반반 기대되는 마음이었다. 먹어본 결과 소스1이란 적정한 수준이었다. 건강식 카테고리에 확실히 들어가는 제품이었고, 불량한 맛의 첨가 면에서는 건강식이라고 주장할 만한 한계선에 딱 닿아있는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포만감도 충분해서 평일 아침용으로도 가능하겠다는 결론. 


 아침을 백년만년 느긋하게 먹고 타로카드를 꺼내면서 2시간은 걸릴 것 같다 생각하면서 스프레드 천을 깔았다. 오늘의 운세, 이번주 운세부터 직장, 투자, 생활 나를 둘러싼 것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시간. 지금 가장 관심있는 것 외에는 무감각하고 둔해서 카드로 나 자신과 주변 상황을 살펴보고 인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오늘 내 자리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카드는 전차와 심판카드. 전차는 돌진하는 카드다. 혹은 강한 행동력이 필요할 때에도 나오는 카드. 심판카드는 강력한 외부 에너지가 들어오는 카드. 연말이 코앞이니 어떻게 지내나 궁금한 지인들 카드도 뽑아볼 생각이었지만 이러다 일요일이 다 갈 것 같았다. 중간에 언니 이번주 운세를 봐주고 다 보고 일어나니 역시 2시간이 꼬박 지났다. 



 심판과 타워 카드가 들어올 만한 외부 에너지가 힘을 쓴 만한 키워드가 뭐가 있나 생각해본다. 늘 앞만 보고 걸어다니니 올 한해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머리무거워 늘 포기한다. 가만히 앉아 공짜로 한달이 생긴다면 할 일들을 쭉 써보니 61가지였다. 투자자로서, 생활, 여가, 관계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서 모아놓고 보니 생활 카테고리 할 일이 가장 많다. 카테고리별로 글씨에 색깔을 입혀놓고 재분류. 

1. 중요하고 급한 일 

2. 중요하고 안 급한 일 

3. 안 중요하고 급한 일 

4. 안 중요하고 안 급한 일

안 중요하고 안 급한 일이 25개로 가장 많다. 멍때리고 보내면 쓸모없이 가장 먼저 처리하게 되는 일들. 중요하고 급한 일 9가지 중 절반은 정리하는 일들. 역시 글로 써보는 게 도움이 된다. 12월 한 달 동안 다 할 수 있나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시간표에 끼워넣어서 하나씩 차근차근 하자는 생각을 하다가 일단 일기부터 쓰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안 중요하고 안 급한 일인데 가장 먼저 일기부터. 


 하늘에서 내려주는 조력자를 잘 받으려면 오늘 저녁에 중요하고 급한 일 하나를 시작해야 한다. 우선은 일기를 쓰고 노을을 잘 보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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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종일 시간을 쓸 수 있는 주말이라 신나서 다섯시반에 깼다. 어제 잠들기 전 그 정도로 설레지는 않았는데? 요즘 들어 특히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노는 기분이다. 목요일 밤은 오랜만에 악몽세트를 꿨는데 아마 Y샘 퇴사 때문일 거다. 무의식이 3분기가 걱정돼서 미칠듯이 요동쳤겠지. 의식세계에서는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지난주 월급인상 얘기를 하고 해결됐다고 생각한 다음날 Y샘이 한달 뒤 퇴사하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Y샘 직전에 다녔던 T샘이 다음날부터 안 나올거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날 밤 이석증이 왔다. 외출중이었는데 당장 눈앞이 캄캄하고 입맛이 소멸하는 게 느껴져서 집으로 바로 돌아갔었다. 이번 전화를 받았을 때는 놀랐지만 담담했고, 상황을 거리를 두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에 내가 이만큼 자랐군! 하기도 했고, 지금 내 중요한 일들도 많고 바빠 이제 인사관리는 사장님이 신경써야지 할 수 있었고 분명 괜찮았는데. 아닌 모양. 일단 무의식이 주는 경고 같아 무리*무리로 계획한 주말은 포기해본다. 


 갑자기 할 일을 다 없애고 나니 아침부터 멍-했다. 오늘은 뭐하고 내일은 뭘할까 고민하다 순식간에 멍하기를 반복. 몸을 움직이려고 차타고 가야되는 맛집 D도서관에 다녀오기로. 집 근처 H도서관은 장서는 많은데 아무 책을 빌리러 가면 고를 수가 없다. 큐레이팅도 신간 코너도 언제나 내 취향과 다르다.


 다음주 모임책 한권을 꼭 오늘 빌려야해서 갔다가 대출한도를 꽉 채워 고를 수 있었다. 다행히 상태는 괜찮은 것 같다. 맛이 갔을 때는 D도서관에 가도 빌리고 싶은 책이 없다. 읽고 안 읽고를 떠나서 빌리고 싶은 책마저도.   










 어디에 꽂혀있는지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늘 책을 읽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찾아 헤매는 만화책. 맘에 들길 바라면서 우선 빌리고 본다. 



 생각보다 가만가만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가 항상 부족한 건 시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창문을 여는 건 잘 하는데. 청소기부터 돌리는 게 힘든듯. 그냥 정신적으로 고요한 자리로 들어가는 게 더 쉽다. 



 중압감 그림이 너무 찰떡이었다! 중압감이 몸뚱아리에 끈덕지게 달라붙은 거랑 저 불안한 표정! 세상 철푸덕 앉아있는 모양도 그렇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참 대단해~ 나는 예전에 중압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30대를 살아보면서 아니라는 걸 늦게 알게 됐다. 그냥 20대까지는 진심으로 중압감을 느낄 정도로 잘해보고 싶은 일이나 나한테 중요하도 느끼는 일이 없었던 거였다. 실제로는 엄청 중압감을 느끼는 편 같다. 최근 가장 업데이트된 나는 다행히 짐의 크기는 언제나 그대로라는 걸 알고 있다. 











 표지 그림 때문에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부끄러워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마음먹고 기록했다는 서문. 나도 소소하고 하찮은 행복과 감사를 하루에 한 장면이라도 남기려고 노력중이다. 꽃잎만 모아보고자 하는 취지는 다르지만 매일 조금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같지. '3장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터 봤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노란색, 주황색으로 가득한 여름날에 보기는 약간 눅눅했던 챕터. 덮으면서 이 정도 워밍업이면 괜찮지. 또 너무 재밌는거 가져왔으면 글씨책까지 못 보지. 싶으면서도 내가 보고싶었던 만화는 뭐였을까? 싶다. 생각을 너무 많이 안 해도 되는데 멍하니 보다보면 슬그머니 영혼도 따뜻해지고 자 이제 나도 내 삶을 살러 다시 가자! 싶은거. 순순하게 귀엽고 재밌는거? 



 나는 주로 된일 위주로 기억하는 편이고 대부분 일의 결과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보다는 신경쓰지 않는다. 는 대부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서 그렇다.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일 때는 안된 일도 잘 기억하는 편이고, 일의 결과는 원하는 방향대로 맞추기 위해 무척 애쓴다. 만약 안 된 경우에는 이미 그 당시에 가능한 애란 애는 다 썼을 거라 그냥 어쩔 수 없지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한 게 나는 늘 난 되지 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새겨져 있었는데 최근 들여다보면 그게 좀 희미해져 있는 것 같다. 왜지? 이건 다시 시간을 들여 각인시켜야지.



 만화책을 좀 보다가 점심에 지난 주에 갔던 식당에 갔다. 지난번에 음식을 받았을 때 빈 그릇이 있어서 이건 뭔가 싶었는데 돈가스 소스를 따르는 그릇이었다. 테이블에 돈가스 소스가 없었기도 하고, 머스타드, 와사비, 소금이 같이 나와서 몰랐네. 오늘도 모를 뻔 했는데 언니가 찾았다. 언니는 뉴스나 이슈거리를 매일 챙겨보는 편이다. 한국인이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가위로 잘라먹다가 쫓겨났다는 얘기를 해서 반대로 한국에서 잘못 먹으면 식당에서 쫓겨날 수 있는 경우를 얘기했다. 김치를 씻어서 먹으면? 이건 한국인도 그런 경우가 있잖아. 간장게장을 시켜서 게장딱지를 안먹고 버리면? 이건.. 알려주긴 하는데 쫓아내진 않을듯. 비빔밥을 시켜서 안 비비고 밥이랑 반찬을 집어먹으면? 외국인들이 좀 그렇긴 하지. 쌈을 한 입에 안 먹고 끊어먹으면? 그러네. 한국인들은 굳이 한입에 욱여넣어서 먹긴 해. 아무리 그래도 쫓겨날만한 건 생각해내기 어려웠다. 새삼 올해 4월에 셰익스피어 읽기를 건너뛰었다는 깨달음. 여름에 생맥을 시켰는데 미지근하게 나오면? 아 이건 반대. 반대로 가게를 박차고 나갈 상황이지.


 









 밥 먹고 들어와서 체력보충을 위해 책을 들고 침대로 갔다. 5시에 염색하러 가야되니까 그 전에 자고 일어나야된다. <환상통>에서 받은 충격은 연애소설과 연애실용서로 옮겨갔다. <환상통은> 100% 공감할수도, 100% 공감할 수 없기도 없어서. 책을 집어들기 전 외쳤던 덕질이 왜 사랑이 아니란 말이야! 는 슬그머니 입에 도로 쏙 들어가서. 원래 사랑은 연애는 무엇인가 싶어 연애소설에서 다른 사랑과 연애를 보고 싶어졌고, 내가 연애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싶어 연애실용서를 보고 싶어졌다. 

 

 내가 뭘 보고 싶은건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아무튼 연애소설이 대략적으로 정리된 가이드북같은 게 필요했는데 예를 들면 00은 이루어지지 않는 짝사랑 소설, 00은 완전 다른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 대충 이런 것. 제목은 딱 내가 찾는 책 같았지만 별로 아니었다.. 그래도 작가들 글이 모인 책이라 읽기는 좋았다. 


 박준의 글에서 '그 남자는 인근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던 여자의 애인이었다.'는 문장을 보고 몇번을 다시 읽는다. 여자를 군인으로 생각해서 앞뒤가 맞지 않음.. '문제는 혼자가 아니라 한 남자와 함께 나왔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인근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던 여자의 애인이었다. 외출을 나왔다가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애인이 얻은 여관방에서 그도 역시 이십사일을 머무른 것이다.' 여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서 여자를 군인으로 착각. 누가봐도 남자가 군인인데 멀쩡한 문장에서 왜 여자를 군인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확률이 희박한 경우의 수를 하나의 경우의 수로 봐주는 성향이 너무 강하다.


 김보통이 쓴 <속 깊은 이성 친구>, 박준이 쓴 <상실의 시대>, 안은별이 쓴 <산시로>, 정세랑이 쓴 <제인 오스틴 북 클럽> 꼭지를 읽고 고민한다. 작가가 달라 스포가 제각각이다. 읽지 않은 책까지 읽을 것인가, 읽지 않은 책을 읽기 위해 에세이를 읽을 것인가.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읽기로. 


 작가들이 쓴 연애소설과 사랑 이야기는 각자 스타일로 좋아서 충격을 받는다. <속 깊은 이성친구>는 작가와 제목을 빼면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상실의 시대>는 세련되게 잘 써서. <산시로>는 이 책이 이런 책이었던가! 싶어서.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은 이게 책이랑 무슨 연관있는 내용인가 하다가 다정한 글에 쏙 빨려들어가서. 여러모로 다시 읽고 싶게 하는 매직핸드들.


 정세랑의 글은 제목부터 사랑스러운데 '연애소설 애호가를 애호하는 이유'.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다.' ...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에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이입하며, 쉽게 증오에 빠지지 않고, 공동체적이며, 약자를 배려하고, 문화상품에 온당한 대가를 치르길 주저하지 않고, 관심사가 다양하며, 삶을 즐기려는 건강함이 돋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동네의 조그만 낙서, 길가에서 만난 귀여운 동물들을 알아보고 예뻐하는 사람들이라서 연애소설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 사랑스러운 것들을 알아보는 센서라 해야 할지 안테나라 해야 할지 하여튼 감각 수용체가 고도로 발달한 이 특별한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녀를 불문하고 참 세계에 이로운, 반할 만한 이들이었다. - 283p 

 오.. 맞는 것 같다. 나도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자. 


 ...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공계 남자랑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해 버렸다. 독서가들끼리 서재를 합칠 때 그렇게 고생스럽다는데, 나는 그런 고민 없이 책꽂이를 독식할 수 있었다. -285p

 이런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떻게 정세랑같은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을까? 싶어 신기했는데, 책장 이야기에는 납득이 간다. 이 부분에 대한 박준의 설명은


나와 당신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어렵게 만든다. 그 수많은 다름을 견주어 보는 동시에 그 다름을 감내해 내야 한다는 점이 우리의 사랑을 아프게 만든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평소 자신에게조차 내색하지 않던 스스로의 속마음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개 오랜 상처나 열등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사랑을 외롭게 한다.

 하지만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다면 사랑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당신의 외모와 성격과 목소리와 자라 온 환경과 어떤 것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이 나와 다르다는 점에서 사랑이 탄생한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 환경, 생각을 가진 사람만을 찾아 사랑이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나는 긍정하지 않는다. - 182p 

 오.. 역시 이 책은 취지에는 맞지 않는데 잘 쓰는 사람들이 쓴 건 역시 좋아.










 저녁까지 모임 발제문도 올려야 돼서 미용실에는 모임책을 가져갔다.


스스로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은 언제나 천하의 쓰임새가 기다리고 있는 법이니, 너무 좋은 것만 찾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 125p [절제를 물려줘라]

 찾아보니 일독 때도 밑줄을 그어뒀다.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본다. 어릴 때는 스스로 재밌어서 열심히 하는 것으로 행복하고 충만했다. 요즘은 내가 스스로 좋아서 열심히 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그 과정 자체로 혹은 이후에 언젠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좋지 생각한다. 어릴 때는 단순한게 좋고 복잡한 것은 굳이 싫어했다. 요즘은 기꺼이 복잡해지는 것이 가치있고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올린 발제는

책에서는 인생을 절제해서 운을 만들어가는 걸 중요하게 말하고, 그 중에서도 음식 절제를 몇번이나 강조해요. 저같은 경우는 식습관은 규칙적인 편인데, 가끔 육체적으로 무리한 날은 너무 힘들어서 과식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조화가 깨져서 뭔가를 채우기 위해 평소보다 더 먹었구나 하고 이해를 해주거든요. 정신적 허기가 과식으로 이어진거야 할 때도 있고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과로했을 때 먹게 되는 음식이나 식습관이 있는지 궁금해요. 먹고나면 나를 달래주는 음식이라던가 에너지를 한방에 쭉 올려주는 매직푸드라던가..?

 

 저녁은 둥지냉면..! 실은 비빔면이랑 둥지냉면 면을 찬물로 헹굴 때마다 기후위기를 걱정한다. 나중에 물이 부족해져서 면을 찬물에 헹궈먹는 게 금지되는 법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헹궈먹는 면에 사치세가 엄청 붙는다던가. 그러다 자유 둥지냉면 자유 비빔면 시대를 살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급 행복하게 호로록. 찌는 여름이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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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먹은 에너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무래도 내 뇌 중 언어 영역은 특히 가소성이 너무 높은 것 같다. 


 올해 연초에 1년 반만에 복직했을 때는 언어를 하나 잃어버린 것 같았다. 말문이 터지질 않아서 답답하고 힘들었다. 11년이나 매주 50시간 이상씩이나 매일같이 했던 일인데도 1년 반만에 까맣게 잊었다. 


 1년만에 다시 일기를 쓰려고 하니 또 언어를 잃은 기분. 갑갑한데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서 매일 한줄씩만 쓰다보니 어떤 날은 두줄도 쓰고 어제는 몇줄 쓰고. 책도 하나씩 하나씩 읽고 싶은데 읽히질 않아 가벼운 책들부터 한줄씩 다시 읽어나가는 중. 
















나는 그들이 얼마나 완벽한지, 얼굴의 좌우대칭은 얼마나 정확한지, 잡티가 하나도 없는 피부는 얼마나 윤기가 흐르는지에 대해 중세의 기사처럼 혈관 하나하나를 풀어헤쳐 길게 노래하길 원했다. 끊임없이 성벽을 타고 올라가 끝내는 정복하고 마는 담쟁이처럼, 온 힘을 다해 그 아름다움을 설명할 말을 찾고 싶어했다. 17p

 

 요즘은 나에 대해 설명할 말도 못 찾고 헤매는 중이다. 설명하지 못하는 건 아는 게 아니라던데.. 빠니보틀에 빠져서 덕질을 시작했고, 작년에 본 최애 타오르다에 이어 덕질 2부작 환상통을 봤다. 음악 소비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유튜버 팬이라 유튜브에 빠져있는 시간도 급격하게 늘었다. 덕질하려고 인스타도 다운받고 계정도 만들었다. 


나는 내가 알 정도로 유명한 연애소설들,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고전을 읽었고, 눈에 띄거나 인상깊은 구절을 기록했다. 어떤 것은 문맥 파악을 위해 문단 전체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도 욀 수 있는 몇 개의 좋은 문장을 건졌지만, 당시 내가 강하게 느꼈던 건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이름 아래 나와 근친성을 주장하는 화자들이 대부분 거짓된 인물이거나 혹은 이해 불가능한 변태라는 사실이었다. 독자인 내가 화자와 동일시될 수 없으니 독서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40p


 작가는-뒤에서 경험에 기반한 소설이라고 나온다- 덕심을 이해하고자 각종 연애소설을 탐독하고 분류했다고 한다. 이렇게 창조적인 방법이 있었던가? 당장 따라해보고 싶다.


만옥을 만나기 전,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 담아둘 길이 없을 때면 나는 귀중한 이 얘기를 사람들에게 했었다 -10p


 무심코 자기전에 영상을 보다 하나마나한 얘기를 했다. 

 빠니보틀 잘생겼지 않아? 

 그건 아닌것 같다 

 잘생겼는데 이거 봐봐

 아 근데 인터넷에 이런 얘기가 있더라 사주에서 연애운이 들어올때 연애를 안하면 덕질에 빠진다 하던데

 오 그래? 

 덕질도 사랑이 맞긴 하지

 듣고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아무튼 빠져있는 00 00하지 않아? 라는 질문은 묘한 데가 있는데. 물어보는 사람은 돌아오는 답이 예든 아니오든 즐겁고 행복하다. 예면 예~~! 진짜 00하지? 진짜 진짜~~ 라서 신나고, 아니오면 그래? 그렇군 진짜 00한데~~? 입꼬리 올라가면서 행복하다. 나는 덕질하는 사람을 별로 못 만나봐서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아서 답해본 기억이 없어서 몰랐는데.. 답하는 사람은 예든 아니오든 귀찮고 의미없는 것 같다. 


 사랑의 힘으로 뭔가 괜찮은 걸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별로 아닌 것 같다. 참고문헌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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