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누 디카페인 라떼를 타서 앉았다. 한포가 가루양은 많지만 물을 100ml 타야해서 진짜 쬐끔 넣어야하는데 마침 선물받은 작은 컵이 딱이다. 이 컵이 생겼을 때는 여기다 도대체 무얼 마시나 했지만 예뻐서 가지고 있었는데 쓸모가 있다. 


 오늘은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아침을 먹고 에니어그램 책을 10쪽 정도 읽고 나른해서 무얼 할 수 없고 아주 졸린건 아니어서 들어가 눕기도 애매해서 몸서리를 쳤다. 겨우 일반쓰레기를 한번 버리고 왔더니 지쳤다. 어딜 나가서 생각정리를 하고 오자 싶었는데 가보려고 저장해둔 카페는 월요일 휴무라서 쉬는 날이다. 여긴 저번에도 그랬는데. 도서관에라도 다녀올까 싶었다가 아침에 오늘의 카드로 나왔던 데스카드를 생각하며 참았다. 이런 날은 안 하던 걸 안 해야 하고, 외출도 안 할 수 있다면 좋다. 자려고 남편 방에 가서 좀 누워있으니 누운 것 만으로 약간 충전이 돼서 다시 나왔다. 언니도 비슷한 상태라 오늘 뭐 꼭 해야하는 일이 뭔지 묻다가 앞으로 한파가 7~10일 연속되니 밀린 대빨래데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일년동안 미뤄둔 빨래가 있어서 꼭 해야하는데. 천생리대를 쓰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힘들고 바빴던 나날 그걸 그냥 마른 상태로 베란다 한곳에 쌓아두고 무시하고 지냈는데 이제는 정말 치워야한다. 운명의 데스티니처럼 며칠전 언니가 발을씻자가 핏자국도 귀신같이 빼준다는 팁을 줘서 솔깃했었다. 그얘기를 듣고 나도 유튜브에서 봤는데 발을씻자가 바퀴벌레도 잡는대! 진짜왜그래? 미쳤어! 라고 했었지. 오후에 드디어 생리대와 사투를 시작했다. 물이랑 발을씻자에 담궜다가 핏물을 헹궈내고 무한반복. 양이 많아서 이걸 하고 있자니 인도의 빨래왈라들도 생각나고. 이거 지구환경에 도움되라고 일회용 안쓰고 천을 쓰는건데 이렇게나 물을 많이 써버리면 이게 맞나도 생각하고. 근데 발을씻자는 정말 끝내줬다. 비쩍 말라버린 핏물이 조금씩 나오기도 하지만, 비릿한 냄새도 이 일의 힘든 점 중 하나인데. 왜인지 피냄새도 안난다. 정말 왜이지? 발을씻자는 정말 최고야.


 어제 저녁 남편이랑 아바타3를 보고 왔다. 나는 아이맥스관이 처음이라 25000원짜리 영화가 있다는 것도 예매하면서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추천 자리를 검색해봤지만 당연히 추천 자리는 없었고, 끝에서 4,5번째에 앉았다. 남편이랑 볼 수 있는 시간대에는 좋은 자리는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봤는데 사이드 시야라서 안 좋은 느낌없이 재밌게 잘 봤다. 캐릭터들이 확실해서 에니어그램으로 캐릭터 분석해보면 참 재밌겠다 생각만 했다. 남편과 돌아오는길에 생각만 했다고 얘기를 했다. 


 역시 손으로도 뭘 쓰기 시작해야 이 혼돈과 무기력 사태가 어찌 될거 같아서 가계부를 꺼냈다. 어제 영화관에서 먹은 콜라랑 간식 만원도 적고, 책상에 2-3개 정도 널부러져있던 영수증도 썼다. 역시 뭔가 다시 시작된 느낌이어서 에니어그램용 다이어리도 하나 지정해서 쓸까 했는데 실패했다. 가까운 곳에 적당한 양장 다이어리가 열어보니 불렛저널용 이라서 포기. 다른 적당한 걸 찾아나서는건 힘든 일이라 다음으로 미뤘다.













그에게 분노를 갖게 한 것이 치밀어 오르는 나의 분노임을 알았다. -10p


 다시 좋게 처음부터 읽기로 했다. 5번에 가서 앞부분만 조금 봤는데 역시 나에 대한 내용 같았지만 1번 만큼은 아닌 것 같다. 유형별로 앞부분만 조금씩 볼까 하다가 역시 차근차근 느긋하게 보기로 했다. 아침에 계란후라이를 해서 참치랑 간장이랑 케찹에 비벼 먹었다. 1년간 후라이팬이 없이 살아서 최근 드디어 후라이팬을 샀다. 소비자보호원에서 테스트했던 결과 라는 게 있다는 걸 몇년전부터 기억해둬서 다시 검색해서 결과를 보고 골랐다. 홈플러스 걸 골라서 사들고 오면서 진짜 신났다. 드디어 후라이팬을 샀어! 그런데 처음 썼을 때 가운데가 다 타버렸다. 조사했던 모델과 똑같은 이름인 것만 확인하고 바로 샀는데 후라이를 해보고 나니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대체왜?! 화가 났다. 후라이팬을 왜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들어서 기름이 바깥쪽으로 내려와서 가운데가 홀랑 타게 만드는거야? 오늘은 두번째 였기 때문에 계란을 사이드로만 깼다. 오늘도 또 탔다. 또 화가났다! 뜨거울때 물을 부어놨어서 벗겨지긴 금방 벗겨지지만 화가 난다. 이럴때 나는 이렇게 후라이팬을 잘못 만들어서 내가 화가 나는거야. 이건 당연한 거야. 후라이팬이 잘못을 하니까 내가 화가 나는 거지 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후라이팬과 내가 화가 난 건 상관이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후라이팬에게 분노를 갖게 한 것이 치밀어 오르는 나의 분노라는 것을 오늘 조금은 깨달았다. 


 하지만 역시 이놈의 후라이팬은 화딱지가 난다. 세번째 후라이는 어떻게 해먹지? 스크램블은 스크램블이 먹고싶을때 먹고 싶다. 후라이팬 때문에 억지로 스크램블만 먹기는 싫다고. 이 책을 다 소화할 때쯤엔 후라이팬은 후라이팬이요 나의 분노는 나의 분노로다. 조금은 할 수 있게 되겠지. 내일은 우선 거리두기를 하면서 계란찜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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