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정이 많다는 뜻. 정은 존재하는 상태 그대로기도 하고, 표현형일 수도 있고. 많다는 건 절대적으로 많을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많을 수도 있을 것. 내가 생각하는 다정은 형체가 있어야 다정. 아마 배려와 친절같은 모양으로? 그러니 다정을 주고 받을 생명이 둘 이상 필요하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다정은 정확한 다정. 필요했던 배려와 필요했던 친절을 받을 때. 또 필요한 줄 몰랐는데 나 이거 필요했네? 깨달을 때 저 세상 다정을 느낀다. 아마 내가 보내는 다정을 받는 상대방 생각은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다정이란 표현될 때 의미있고, 양적 개념보다 질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적중도가 중요하다. 차근차근 다정이 습관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책이었냐면. 지적이고 바르고 선한 의도를 가진데다 심지어 저 세상 다정까지 다 가진 책이었다. 


 정확한 다정은 나를 무장해제시켜서, 읽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한 생각만 했다. 내가 몰랐던 내 몸과 마음, 상태에 대해 이런거였나? 생각해보고, 가늠해보고, 이해해주면서 나 자신에게 더 다각도로 다가간 것 같다.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스트레스에 우리 신체가 반응하는 경험들이 누적됨에 따라, 탄력성을 잃고 신체 항상성의 균형점이 바뀌어 불균형 상태에 머물러 유지되는 상황을 바로 알로스테시스 과부하라고 한다. -148p

  순간 종이에 스쳐 다칠 때가 많은데 가볍게 피가 나고 다쳤을 때 모를 때가 대부분이다. 상당히 크기가 클 때도 그렇다. 보통 피가 나는 걸 눈으로 보거나 물에 닿았을 때 이후로 아프네 하고 느끼게 된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두 가지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었다. 1. 무감각해서 다쳐도 잘 모른다. 2. 관심사에 몰입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자원이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인지까지 분배되지 않는다. 알로스테시스 과부하는 정말 많은 증상과 상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라는 관점에서 보니 새로웠다. 만약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반복적인 스트레스로 영점이 바뀐거면 내가 많은것에 엄청 무감각한 게 아니라 오히려 특정한 부분에 아주 민감한 타입이 아닐까? 1-2 가설 추가.



개념들의 범주가 저장되는 뇌 부위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한 연구에서는 앞서 소개한 TMS라는 기법을 사용해서 특정 뇌 부위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면 뇌의 범주화 기능 때문에 발생하는 기억의 왜곡이 오히려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70p


따라서 다양한 자극을 모두 개별적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유사한 것들을 묶어 하나로 대표할 원형 하나만 기억하는 것이 훨씬 쉽고 효율적이다.-165p

 언어 출력이 종종 잘못되는 점에 대해서도. 나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여러가지다. 1. 객관적 청력이 떨어져서(음악을 너무 크게 들었..) 2. 안 듣고 있었어서(딴 생각 하느라) 3. 해부학적 문제?(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 너무 가까운게 아닐까 의심... 은 유머. 정확하게 듣지 못한 말이 대충 입력돼서 이거? 이렇게 뜬금없는 말이 바로 출력되는 일이 많다.) 4. 사회적으로 다빈도로 사용되는 언어적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빈도가 낮은 가능성도 가능성이라 생각하는 속성 때문) 그런데 어쩌면. 게으르고 본질을 중요하게 여겨서(양방향 양성 되먹임..ㅎㅎ) 애초에 언어자극을 저장할 때 본질적 개념 중심으로 엄청 범주화 범위를 크게 잡아서 대충 저장했다면. 출력이 대충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럼 3(어쩔 수 없다), 4(상황 이해도를 올려가면 된다)와 다르게 그냥 그대로 자연스러워진다. 가장 맘에 들고 설득력있는 5번 가설 추가.



뇌는 최대 용량, 즉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 보상 예측 능력을 높이려고 노력하며, 이 시점을 넘어 추가되는 복잡성에는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 180p

 흥미를 느끼다가 금방 관두는 점에 대해서도. 어떤 관심사에 순식간에 푹 빠졌다가도 일정량이 채워지면 확 질리거나, 충분히 가지고 놀기 전에 다른 새로운 관심사에 빠지는 편인데. 이제까지는 끈기가 없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상 예측 능력과 도파민 뉴런에 대한 설명을 적용하면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나는 보상 예측 능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오는 쾌감을 사랑하는 거고, 그래서 정점을 넘은 과도한 복잡성까지 단계가 진행되면 흥미를 잃는 거. 아주 어릴 때부터 가졌던 관심사의 일대기를 생각하면 이 쪽이 훨씬 설득력 있다. 어린이 때부터 점진적으로 지금까지 종합적 사고력이나 판단력, 이해력, 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왔을 테니까 보상 예측 능력의 정점에 도달하는 시점이 점점 늦어져 왔을 것. 실제로도 최근 몇 년을 보면 그 이전보다 비교해서 집중하는 기간이 더 길어진 게 맞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전체적인 인지 능력과 총 용량을 올려가면 몰입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얘기! 투자한 총 시간을 늘려주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정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도 쉬워질 것.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이 그 사람의 성공담을 접하고 촉발했다면 이는 내가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상황을 파악하게 해주는 신호이기도 해서, 삶의 만족도를 스스로 높이기 위해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단서를 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 207p 

 최근 가장 강력했던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던 건 미키7을 쓴 에드워드 애슈턴의 삶이다. 책날개에서 작가 소개를 읽고 책머리 헌사를 봤을 때인데 이런 내용이다. 

"젠에게,

당신이 '문명'을 그만두게 하지 않았다면

이 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서 올해의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얼마나 최고인지 글을 쓰다가 5% 정도 이게 진짜 이 정도일까 하는 의구심이 잠깐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질투였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어떻게 사명을 받은 일, 재밌는 다른 일, 좋아하는 취미, 관계까지 다 이루었을까? 강렬한 질투만큼 강렬한 신호라는 얘기. 내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건 균형 잡기이고. 잘하는 건 깨닫고 원하면 손에 쥐는 것.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경외감이 들 때 '자기'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지거나 축소된다고 하며, 겸손해지거나 겸허해지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친사회적 경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 297p

 노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왜 노을 보는 걸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게 돼서 좋았다. 노을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1. 내가 우주에서 엄청 엄청 작은 먼지처럼 느껴지고 

2. 이 작은 먼지가 아름다운 시간들을 차곡차곡 조각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3.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가 

4. 의미라는 게 어떠면 무슨 소용인가 생각한다 

5. 이 환상적인 이벤트가 실은 매일 매일 있다는 사실이 새롭고 

6. 인류애가 생긴다 

그런데 사회성도 좋아진다고 하니 나에게 꼭 필요한 활동이었다. 노을을 볼 시간을 더 확보해야겠다. 


 책은 진정한 자아정체성을 찾으려면 오히려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확립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자기 감정 인식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마무리된다. 공저인 <행복은 뇌 안에>에서는 자기 감정 인식 훈련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공감 능력이라고 한다. 내 감정이 풍부해지면 타인을 이해하는 재료가 더 많아진다는 것. 해마라는 감정일기 앱을 쓴지 3개월 정도 됐는데 아직도 내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게 어렵다. 하루를 10개 중 하나의 감정 이모티콘으로 기록하고 간단하게 메모를 남길 수 있는데 입력 전에 한참을 생각할 때가 많다. 실제로 내가 쓰는 이모티콘은 10개 중 6개다. 3개월 전과 비교하면 1. 감정 이모티콘을 고르는데 걸리는 시간 단축 2. 맨날 똑같은 감정이 반복됐는데 갈수록 조금 더 다양한 이모티콘으로 화면이 채워지는 중 3. 이모티콘만 남기다가 메모가 생겨나고 글자수가 늘어나는 중. 진전이 있다. 내 경우는 자기 감정 인식을 위해 나 자신과 내 상태에 대한 이해도를 더 올려가야 할 것 같다. 


 차근차근 담백하고 명료하게 알고리즘을 설계한 과정과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방법을 알려주고, 읽는 내내 내가 전원부터 켜는 연습을 하게 해서. 스타트 버튼을 꼭 눌러보고 싶게 올해 새로운 과제와 방향성을 선물해준 책. 차분하고 정확하게 다정한 위로를 준 고마운 책.




시간이 된다면 교수님께 궁금한 것


- 뛰어난 논문을 볼 때 질투심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해요. 

 인정 욕구 기록집을 쓴다고 하셨는데 1. 어디선가 질투심을 느낌 2. 집에 가서 인정 욕구 기록집을 써보기 3. 내 욕구를 이해하고 인정 4. 욕구 해소를 위한 행동을 일상에 추가 이런 알고리즘으로 가는 건가요? 

 차분하게 인정 욕구 기록집을 써보려면 어떤 활동을 하다가 기록을 하기까지 간격이 생기는데 그 사이 시간을 보내는 비법도 궁금해요. 예를 들어 강렬한 질투를 느끼면 평정심이 흔들리는데 차분하게 생각해보기 전까지는 스스로 잘 해소가 안 될 테니까요.


- 교수님은 언제부터 온화한 사람이 되신 건지 궁금해요. 

 1. 특정 시점 이후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2. 살다보니 스스르 온화해졌다 3.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교수님 영상을 보면 온화함이라는 개념이 물질로 형상화된 느낌이거든요.

 책을 출간할 때마다 자존감이 휘청휘청한다고 하셨는데ㅎㅎ 타인이 볼 때는 굉장히 정서적으로 안정감 있게 보이시거든요. 인생에서 어떤 사건이나 부분, 노력이 가장 지금의 안정감을 구축하기까지 영향이 있었나요? 인정 욕구 기록집 외에 다른 게 또 있는지 아니면 시도해봤지만 별로 효과를 못 봤던 것도 궁금해요.


- 심리학 학사 후에 어떻게 뇌과학 분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90년대에 심리학을 전공하신 다음 계산신경과학을 연구하고 그 다음 생물심리학을 연구하셨는데요. 계산신경과학을 연구한 다음에는 생물심리학을 더 연구하고 싶은 게 당연한 수순같아요. 그리고 90년대 00년대가 대중에게는 과학적인 면 보다는 인문학적 방향으로 대유행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과학적 근거 기반 연구로 특히 뇌과학 방향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물론 대중과 학계 분위기는 다르겠지만요~



- 내적 모형이 평균 이하로 부적절해서 예측 오류를 덜 경험하는 경우에 개인의 행복감의 관점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균 이하를 유지하고, 비슷한 집단을 이룰 수 있다는 전제하에요. 

 자기감의 기준과 기준에 따른 예측오류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엄청나게 큰 혼돈과 불통의 원인처럼 느껴졌는데요. 내적 모형이 평균 이하로 부적절한 내적 모형을 갖고 있어 분위기 파악은 제대로 못해도 자신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견지하는 유형 얘기가 꼭 제 얘기 같거든요. 개인과 사회의 관점에서 나눠서 보고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현실성은 없더라도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일반적인 사회 생활은 가능한 정도라고 가정하고,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요. 사회적으로는 또 평균 이하인 사람들끼리 모여있으면 (이 경우는 동일 집단 내 평균이 바뀌어버리긴 하겠지만) 역시 같이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행복감과 긍정적인 태도도 몸 건강 마음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잖아요!


- 항상성 불균형을 해소하는 즐거움이 정말 나쁜가요?

 도파민이 폭발하면 너무 좋아요! 지금은 전체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잖아요.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점에서 보면 안 좋지만요. 그런데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으면요? 건강한 방향성으로 도파민을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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