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나 독서에세이 책은 들기 전에 신중해진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가 볼 책과 안 볼 책. 보려고 정해둔 책은 서평이나 에세이를 나중에 보고 싶다. 안 볼 책은 마음껏 서평이나 에세이를 아무때고 볼 수 있다. 마음속에서는 이렇게나 단순하고 명확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광고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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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거나 말거나>는 길지 않은 글들이라 다루는 책 목록이 많은데, 그 중 아는 책도 별로 없고 대부분 안 볼 책들이라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저자의 말에서부터 하트 뿅뿅 반해버리는 책과 아닌 책.

'비필독도서 칼럼'을 쓰기로 작정한 계기는 '편집부로 배달된 책들'이란 제목으로 여러 문예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책 소개 칼럼들 때문이었다. 출간된 수많은 책들중에 극히 소수의 책들만이 평론가들의 책상으로 배달된다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일이다. - 저자의 말, 5p

문득 나는 이런 책들에 관심을 쏟아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보겠노라 결심했었다. 각각의 작품들을 문예사조에 따라 분류하고, 책의 성격이나 경향을 규정하고, 이 책이 다른 책보다 나은지 못한지 독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리뷰를 쓸 줄 모른다는 걸, 게다가 그다지 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나는 독자로, 아마추어로, 그리고 뭔가의 가치를 끊임없이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애호가로 머물길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 저자의 말, 6p

 이 책은 하트 뿅뿅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비필독도서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고, 각잡아 대해줘야지 생각했다가 포기하는 멋진 사람.




 세상의 모든 소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화가 치미는 소설과 아닌 소설.

소설의 원본은 일단 그 방대한 분량으로 독자들을 압도하는데, 6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며, 그 분량도 1500페이지에 달한다. 폴란드어판은 축약본인 영어판에서 중역된 것으로, 여기에는 대략 300여 명의 인물이 나온다. 중국 인명을 기억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유럽의 독자들에게 이 300이라는 숫자 또한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내 경우에도 벌써 몇 번이나 이 책을 독파하려고 시도했지만, 여전히 누가 누군지 헷갈리고 내용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 - 삼국지, 138p

 이거 우리가 러시아 소설 처음 볼 때 빡치는 거랑 똑같은가봨ㅋㅋㅋㅋㅋㅋㅋ 꺄르르해서 이 기쁨을 언니에게 전했는데 남의 고통이 그렇게 즐겁다니 한다. 그래도 통쾌한 공감은 속시원하고 신났다. 영어판 축약본에서 중역한 걸 읽어야하는 상황, 낯선 언어의 길고 비슷비슷한 이름ㅡ우리는 보통 두 글자로 읽어 세글자인 한글 이름보다 짧아진다. 한자를 쓸 수 없으니 영어처럼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면 이름이 아주 길어질 거다. Hwang Chung. 이렇게. 이걸 폴란드어로 소리나는대로 다시 표기하겠지ㅡ, 너무 많은 등장인물ㅡ삼국지에 비하면 러시아 소설은 등장인물이 적은 편이지ㅡ, 하나하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 자꾸 웃음이 나고 즐겁다. 이래저래 사정을 따져보면 그래도 우리가 러시아 소설 보는 게 쉽겠다 수긍이 된다.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락 한 단락을 넘어가며 재미와 즐거움이 치밀어오르는 책이다.

 ... 각 페이지마다 위와 비슷한 사례가 반복된다. 게다가 일부 주인공들의 이름을 책 속에서 때로는 이렇게 표기했다가 때로는 저렇게 표기하는 등,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제대로 완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애로사항이 독서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주요 인물들의 경우 이름의 표기는 반드시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책의 뒷부분에 인명 색인을 배치하고, 그들이 맨 처음 등장하는 페이지를 명기해주는 것도 각각의 인물들을 구별하고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삼국지, 139p

 인명 색인이라니...! 신박한 제안이었다. 한 사람의 다른 표기명과 등장하는 페이지 명기까지 같이 해주면 완벽할 것 같다. 보기 불편한 책을 두고 보완할 현실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고급진 불평이란 이런 것.


 확실히 이해되는 어려움은 삼국지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것도 한 몫 하지만, 근본적인 어려움은 주조연급 인물이 너무 많다는 것일 거라고 추정.


하지만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현 상태를 고수한다면, 이 소설은 영원히 판독 불가능한 책이 될 것이다. 확신컨대 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사람은 편집자들밖에 없을 듯하다. 1만 부나 되는 초판을 찍어놓고, 고작 두세 명이라니... . 터무니 없이 적은 인원이 아닌가. - 삼국지, 140p


 깜짝 놀라 폴란드 인구를 검색하니 3700만명 정도다. 세계대전 때 확 줄었겠지만 이후로는 통상적으로 사회가 안정되면서 늘어났을 걸로 추정하면 그보다 작았을 것. 거기다 삼국지 서평은 1누 1967-1973년에 들어있고, 폴란드에서 1972년 출판된 책이다. 하지만 종이책 출판시장이 축소되는 건 세계적으로 비슷할 것.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한국에서 보통 초판은 1000부 정도 찍는 걸로 알고 있는데 1만부 라니 정말 놀랐다. 폴란드에서 삼국지 중역 축약본 초판 만부라니. 한국에서 영미유럽권, 중국, 일본을 제외한 나라의 오래된 작자미상의 역사 판타지가 중역본이라도 출판되고 있는가 몇 부 찍을 수 있는가 생각하며 재미지다. 길가메시 서사시 정도 대볼 수 있을까?


 숙련된 독자들이 베풀 수 있는 나눔의 미덕은 이런 것이다. 분통이 치미는 책과 꼴불견인 책에 대해 초보 독자나 일반인들에게 속시원하게 면죄부를 주는 것ㅡ그 책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이름도 비슷비슷해서 똥망이야 차분하게 앉아서 볼려고 해도 관계도가 있어야돼 이렇게. 하지만 책을 사는 일과 꼼꼼하게 읽는 일은 다르다. 아무튼 어쨌든 사놓고 꼼꼼하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책에 대해 화가 치미는 것은 정말로 그 책에 관심을 진지하게 가져서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뭔가 생략해놓은 책과 아닌 책.

나는 감탄과 존경의 눈으로 TV 화면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았다. 마흔 살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마치 2+2가 라는 사실도 잘 모르는데 칠판 앞에 불려나온 초등학생처럼 해맑고 천진난만했다. 프로그램에 그의 부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도 오늘 남편을 위해 넥타이를 매주고 구두끈도 묶어주었을 것이다. 또한 자기가 하루만 집을 비워도 남편이 당장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찻물을 끓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주전자를 사용해야 하는지 물어보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여인일 것이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391p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끝내 증명한 앤드류 와일스의 다큐를 보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보게 되었다고 읽게 된 이유를 밝힌다. 이런 것도 사랑스러운 부분.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앤드류 와일스를 보고 그의 부인을 상상한다. 빠져있는 부분 상상하기. 그 상상의 내용도 즐거움이 치밀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들어본 책들의 서평만 몇개 읽어봤지만, 아마 나머지 부분도 신남 터지는 독서가 될 거다. 책을 보는 즐거움을 조각조각 흩뿌려놓은 책이다.


 생략된 부분들을 재구성한 게 또 그렇게 통쾌하고 신나는 책. 춘향전 서평에서도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과 아닌 책.

이 책의 분량은 500페이지가 넘는다. 저자는 말미에서 이 책의 주요 테마와 관련된 모든 질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여름휴가 때 이 책을 가져가라고 독자들께 권하고 싶다. 바캉스 때 읽는 책은 꼭 '가벼운' 것이어야만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벼운' 책은 (독서라는 걸 한다는 전제하에) 주로 잠들기 전에 읽힌다. 가사일이나 직장 업무에 하루 종일 시달리고 난 뒤, 심각한 주제를 다룬 책에 집중하기 힘들 때 말이다. - 총, 균, 쇠, 422p

 진짜 누가 바캉스 때 가벼운 책을 들고 가게 만들었지? 쉼보르스카에 따르면 잘못된 유행에 충실하게 내가 이번에 쌓아둔 책들도 가벼운 책 일색이다. 모처럼 북캉스인데 전집같은거나 달릴까 고민하다 자유독서도 간만인데 다양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아. 하지만 내 책장은 정당한 게 나는 두달 내내 사건에 시달려서 심각한 주제를 다룬 책들에 집중하기 힘든 때가 맞다. 


 하지만 바캉스 때 챙기는 책에 대한 관점은 바뀌었다. 진짜 바캉스를 즐기는 때를 대비해 잘 기억해 둔다. 



 안볼책 서평집이니까 신나게 보자고 빌려온 서평집. 내 책으로 샅샅이 느긋하게 즐거워하고 싶어서 몇 개만 골라 읽고 덮어둔다. 


 그러니까 결국 세상의 모든 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빌리거나 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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