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시 반쯤 일어나자마자 문을 열었다. 어제 자기전 아침에 맞바람 환기 좀 하자고 몇 시쯤이 적당할지 얘기했었다. 여덟시 전이면 되지 않을까? 했지만 요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 때문. 8개월전 맞바람이 불어 여름에도 시원하다는 복도식 아파트. 집을 보여주던 중개사는 그렇게 말했고, 언니가 이 동네 산다는 지인은 겨울이 굉장히 추운 동네라고 말했다. 초여름에는 현관 방충문 설치업자가 엘리베이터에 광고지를 걸었다. 현관문-내 책상-베란다가 일직선상에 있다. 책상 위 자유 종이가 있다+방충망 없는 쪽 베란다문 조합이라면 종이가 바깥으로 날아갈 지경. 맞바람 위력이 대단했다. 20분 정도 환기를 하는 동안 다행히 아무도 안 지나갔다. 초여름 때 시원하다고 했어~ 하고 처음 열어본 날.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다 거실을 보고 갔다. 한여름에 맞바람 부니까 시원한지 알지 못하고 지나갔다. 초가을 아침에는 확실히 추웠다. 치즈팝을 만드려고 전자렌지 문을 열어보니 유독가스 냄새가 아직 난다.


 환기시켜놓고 일기 쓰면서 책상에 앉아있는데 집앞 축구장에서 구호 소리가 들린다. 브!알!씨!티!오!알!아! 같은 뭔가 팀 이름 같은걸 우렁차게 합! 합! 하면서 다같이 외치는 소리. 단체 기합 소리. 다 큰 사람들이 떼로 모여서 진짜 한 마음으로 지른 소리였다. 이런 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만일까? 저녁에 산책하다 보면 야외 에어로빅 수업이 있는데 거기 선생님이 가끔 절도있게 으! 악! 으! 으! 기합을 넣긴 한다. 처음은 너무 이상했는데 듣다보니 점점 건강해보여서 부러워졌다. 하지만 단체기합은 TV로 도쿄올림픽 때 여자배구 경기볼 때가 마지막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기억이 없다. 들은 기억도 없고 그런 기합을 같이 넣어본 기억도 없다. 아침부터 별일이네. 


 점심은 냉동 대패삼겹살 쌈. 핀란드산인데 300g씩 진공포장 돼있다. 면적 70%쯤 겹치게 계단식으로 한덩이로 얼어있다. 20분 전에 꺼냈더니 안 녹고 덩어리채다. 그대로 자른 봉지에 물을 채워서 손에 안 묻게 대충 씻어서 팬에 올렸다. 익히면서 녹는 바깥쪽부터 한장씩 뗀다. 원래 움푹한 조리음식용 접시를 쓰는데 오전에 게임하느라 설거지를 안 했다. 납작한 접시에 뜯어서 먼저 익은 고기를 한 점씩 집게로 옮긴다. 보통 한 팩에 15장 정도라 납작한 접시는 금방 산처럼 됐다. 마지막 한 점을 산 위에 올렸는데 굴러떨어져 접시를 잡은 엄지손가락 위에 닿았다. 너무 뜨거워! 얼른 다 내팽개치고 싱크대에 가서 물을 틀었다. 고기가 안 녹았다고 뜨거운 물을 담궈서 씻는다고 뜨거운 물이 나왓다. 으 뜨거!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조치가 늦어서 색이 빨개지고 아프다. 이럴 때 쓰는 미니 아이스팩을 항상 얼려두는데 오늘따라 없다. 대형 아이스팩을 올리고 있다가 아이스팩을 식탁에 두고 손가락을 눕혀서 댔다. 


 점심 먹고는 날짜가 가득 찬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다녀왔다. 간 김에 얇은 소설도 두 권 가져오고 신간 코너도 구경. 최근 리모델링한 후로 신간 코너 책장이 작아졌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알라딘 왔다갔다 하면서 제목 들어봤는데 용케 여기 있네? 들고있는 책 앞표지 소독 안한 거라 옆구리에 끼기 싫어서 한 바퀴 돌아보고 한 번에 빼려고 움찔움찔거리면서 게처럼 이동.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체크하고 있었는데 아주 잠깐. 입구 쪽에서 들어온 남자 분이 나와 같은 루트로 요란한 소리로 신간 체크. 회전할 때 노련하게 슬쩍 봤는데 남자분은 두 권을 골랐다. 설마는 역시. 한바퀴 돌고오니 그 찰나에 없어졌다. 두 권중 아래쪽에 깔려있었나봄. 원래 빌리려던 책이 아니었는데도 괜히 분하다. 


 저녁은 콩나물 톳국수 비빔이랑 콩물, 고구마. 콩나물 머리 떼기가 귀찮아 숙주를 더 자주 먹는데 오늘따라 집앞 마트에 숙주가 다 떨어졌다. 언니는 콩을 일정량 넘게 먹으면 가스가 찬다. 톳국수는 양념이 잘 안 배서 대신 흡수해줄 채소류가 필요하다. 팔도 비빔면 양념장 파는 걸로 혼합하면 비빔면 대용식같이 된다. 양념장 뚜껑만 열어도 바로 비빔면월드. 비빔면 대체라기보다는 그냥 콩나물 톳국수 비빔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지혜롭다. 하지만 식감, 맛 모두 좋아하고 변비도 해결돼서 실용적인 메뉴. 톳국수는 수분흡수 없이 찰랑거려서 씻고 남은 물기랑 합쳐져 빨간 비빔면 양념이 옷이랑 조리대에 흩뿌려졌다. 부엌의 잭슨폴록. 거침없이. 숙주사러 마트 가려고 여름에 제일 잘 입는 베이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안 지면 버려도 돼. 많이 입어서 얇아졌어. 언니는 순식간에 조리대를 닦아놨다. 우무콩물해먹고 남은 콩물도 마셔서 없애긴 하는데 단백질이 부족한 식사가 됐다. 지난주에 엄마택배로 받은 햇 밤고구마. 밤고구마는 맛없다는 인상에 별로인데 띠용하게 새로운 맛이었다. 싫어하는 포슬포슬한 식감에 고구마맛이라는 게 압축된 맛. 묘하게 맛은 압축맛인데 포슬하게 분포되어 절묘하게 조화로웠다. 포슬포슬한 찐 감자 싫은데. 포슬포슬한 밤고구마 맛있는 거구나~ 언니가 그래서 밤고구마인가봐. 밤처럼 포슬포슬해. 포슬포슬이란 말 언제 써봤을까? 싶은 저녁. 엄마가 햇포슬포슬을 담아 택배로 보내준 걸 알게 된 저녁.


 저녁 산책하면서 보니 플랜카드가 바뀌었다. 오늘 축구대회가 있었다. 어쩐지 그동안 뛰면서 혼자 파이팅넘치는 사람은 많았는데 이상하다 했지. 미스터리는 풀렸다. 게임하면서 목이랑 무릎, 눈이 이상해졌는데 걷고 나니 아주 약간 덜 이상한 느낌. 평소보다 시간이 약간 늦어져 주자 D만 뛰고 있었다.


 돌아와서 마저 게임하는데, 오류가 떴다. <피싱라이프>라는 낚시 게임. 지난주 핸드폰 배터리를 교체하러 삼성서비스센터에 갔더니 기사님이 피싱라이프는 게임이에요? 물어봤다. 네. 낚시 게임이라 낚는 위치가 중요하다. 오류로 멈춰서 종료하고 다시 켜면 자리를 다시 찾고 낚싯줄 내려가는 라인을 따라 다시 루트를 만들어야 한다. 껐다 키니까 1레벨 미끼가 자동으로 계속 걸려있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서 소환퀘스트로 많이 잡아야하는 2레벨 물고기들을 멸종시킬 기세로 잡았다. 언니는 잠시 오류인건지 아까 오류난데 보상인건지 궁금해하면서 스트레스받는다. 잠시 오류인거면 지금 바로 소환퀘 준비하려고. 오류 보상으로 일정시간 혜택 줄 거면 이따가 시간안에 하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단 먼저 잡아. 나중에 1미끼 계속 달려면 힘들잖아. 언니는 나름대로 플레이 계획이 있는데 갑자기 방해를 받아서 스트레스받았다. 그러고보니 나는 원래 자연스럽게 가만히 내버려두면 행동형이었다.












자세히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다.

- 당신이 옳다 1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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