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주인이 없기 때문에
작가를 겁나 튼튼한 나무도마에 올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약간은 눈치를 볼 법도 했지만
과수원 주인들이 모두 장례식장에 있는 밤
혼자 사과를 따먹으러 걷는 기분처럼 거리낌없었습니다.
혼자 여행에 대해 얘기해보라 했다해도 혼자 걸은 건 아닙니다.
숫자가 없는 종잇장을 넘기며 대노한 것은 혼자가 아닙니다.
눈빛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해도 프로필 사진이 부담스러운 것은 혼자가 아닙니다.
읽을만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할만하면 끝나는 이야기에 대노한 것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관찰력이 뛰어나고 섬세하다고!! 가 불편한 것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쪽수가 없어서 한장 한장 종잇장을 꾹꾹 눌러 읽었습니다.
그래서 본문과 상관없는 사진을 액자에 걸린 것처럼 따뜻하게 봤습니다.
흐릿한 듯 주제가 없는듯하더니 보다보니 느낌좋은 사진들이었습니다.
근데 이사람 결혼했어?? 궁금해하고, 섬생활도 추억으로 떠올렸습니다.
소설가와 시인의 여행에세이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시인은 달라 문득문득 훅 들어온 좋은 문장들도 있었다 말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좀 사기인듯..
내 옆에 있는 사람 아니죠..
책에는 맨날 혼여에
옆에 있을 사람 비행기 타고 내일 온다하면 도망가던데..
펜팔로 수험표 교환한 사람 헤어질때까지 못 알아보던데..
여행산문집 아니죠..
관음산만집.
소중한 남이 쓴 시에는 소중한 남이 쓴 시로 답하는 게 인지상정.
우린 어제 서툰 밤에 달에 취해
삯을 잃었네 삯을 잃었네.
어디 있냐고 찾아봐도 이미 바보같이
모두 떨어뜨렸네 남김없이 버렸네
우린 익숙해져 삭혀버린 달에 취해
아무 맛도 없는 식은 다짐들만 마셔대네
우린 이제서야 저문 달에 깨었는데
이젠 파도들의 시체가 중천에 떠다니네
떠다니네 봄날의 틈 속에서
흩어지네 울며 뱉은 입김처럼
꿈에도 가질 수가 없고
꿈에도 알려주지 않던
꿈에도 다시는
시작되지 못할 우리의 항해여
제목 Lost
시인 하현우
덧.
비캐롤로 좋아서 올려봄
거 안보인다고 노래주인 없어도 최애는 씹고 뜯지 맙시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