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을 넘어 생각한다 -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평점 :
진짜 북한을 만나본 평화주의자의 진짜 북한 이야기
50여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던 박한식 교수를 강국진 기자가 인터뷰하고 엮어낸 책이다. 박한식교수는 1939년생으로 어릴적 중국과 북한, 남한에서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고 이후로 미국에서 국제 관계학을 가르쳤다.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중재하고 재직했던 대학에서 남북미 3자간 비공식 대화를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전쟁없는 한반도를 바라는 북한전문가가 굵직한 역사의 숨겨진 뒷이야기와 주변이야기까지 상세히 풀어놓았다.
북한에 대해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은 북한이 자연히 붕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체제의 정통성과 정당성이 아주 단단하기 때문이다. 90년대의 대규모 식량난에도 붕괴하지 않았던 북한은 대북 제재로 굴복하지 않는다. 대북 제재는 북한을 중국으로 등떠미는 것과 같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해온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미친놈’의 독재 국가가 아니라 조선노동당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국가로 봐야한다. 조선노동당은 전체 국민의 15%가 당원으로 체계적이고 중국의 공산당보다 세도 크다. 김일성 때와 달리 지금의 김정은은 조선노동당의 동의없이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 장성택 처형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북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가 낳은 어두운 유산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재무장하기를 바라는데 여기에 북한이 좋은 명분이 된다. 또 일본과 한국에 무기를 팔 수 있다는 것도 큰 이득이다. 북한 핵 개발 담론의 뿌리는 안보 패러다임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전쟁광이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이성적 사고의 결과이다. 또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벌어지면서 재래식 군사력을 비교하는 게 의미없어진 점도 북한이 비대칭 전력에 매진하는 요인이다. 후세인과 카다피가 비참하게 몰락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면 카다피처럼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한을 악마화할 때와 북한과 거래를 할때 얻을 이익을 저울질할 것이다. 거래가 이익이라고 판단만 하면 영웅이 될 기회라는 생각에 전격적으로 북한과 손잡을 것이다. 해법을 위한 기본 전제는 미국의 핵위협 제거, 북한의 안전보장이다. 안전보장은 휴전상황을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북미수교와 불가침조약 체결 등을 의미한다. 전 세계 비핵화를 위한 동반자로 북한을 끌어들인다면 북한외교의 특징인 체면을 살려주면서 국제사회 무대에서 북한에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안보접근법은 힘을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기 때문에 군비 경쟁에 기반한다. 군비 경쟁은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공포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무기와 공포를 통해서만 유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무기를 더 많이 보유한다고 안보를 달성하는 시대는 지났다. 9·11 테러때 민간 여객기 납치만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가 보았다. 안보접근법으로는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도 엉망이 된다. 안보접근법은 승자와 패자만 존재한다. 안보접근법에서 벗어나서 승자와 패자 없이 평등을 중시하고 다양한 견해가 경쟁하는 평화접근법으로 다가가야 한다.
통일은 절대 남한에 손해가 아니다. 지리적 이점부터 지하자원까지 많은 경제적 이득이 있다. 다른 어떤 투자처보다 이익이 크면서 동시에 한반도의 국제적 위상도 달라진다. 하지만 선민의식으로 동질화를 강요하면 갈등과 분쟁이 심화될 뿐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이질성을 포용해야 한다. 앞으로 정-반-합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통일’을 해야 한다. 남북미 비공식 대화를 성공시켰던 저자가 말하는 가장 바람직한 대북접근법은 전제조건 없는 대화이다. 신뢰란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