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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
홍익희 지음 / 책과삶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전달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기축 통화로 군림해온 달러의 비중을 줄이고, 금과 비트코인 같은 대안 자산으로 자산을 재편성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투자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세계 금융 질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예감케 하는 신호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달러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걸까요? 그리고 이를 대신해 '비트코인'이 정말 미래의 화폐가 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깁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본서가 현재의 암호화폐 현상을 단순히 기술 혁신의 결과가 아니라, 인류가 지난 3000년 동안 구축해온 '신뢰'라는 화폐의 본질적 의미와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저자는 '로마 제국의 화폐 정책'부터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그리고 '닉슨 쇼크'에 이르는 세계 금융의 변천사를 상세히 추적합니다. 이를 통해 화폐는 결코 중립적인 교환 수단이 아니며, 화폐를 발행하는 권력이 바로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1971년 닉슨 쇼크는 현대사의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죠. 달러와 금의 태환을 일방적으로 폐지함으로써 미국 정부가 보여준 것은, 결국 기축통화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 신뢰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명백히 한 것입니다.
그 이후 달러 발행액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8000억 달러에 불과하던 통화량이 불과 15년 만에 8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통해, 국민들의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빠르게 잠식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책이 제시하는 핵심 인사이트 중 하나는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통해 어떻게 국민들의 자산을 수탈하는지에 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1972년 이후 달러의 실질 가치는 95% 이상 추락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정부의 통계 조작,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 언론의 침묵이 결합되어 서민들은 자신들의 자산이 서서히 증발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책에서 제시하는 인플레이션의 사회적 해악은 구체적이고 명확해 보입니다. 돈이 많이 풀릴수록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중산층은 붕괴하며, 서민드르이 구매력은 형편없이 떨어지게 되죠.
금융 자산을 많이 보유한 상층부는 인플레이션의 수혜자가 되지만,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불의임에 틀림없습니다.
책의 후반부로 나아가면서 저자가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기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선언'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명확해 집니다. 2008년 리만 쇼크 직후 발표된 비트코인 백서는 사실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 암호학자들은 이미 30년 전부터 기득권의 통제를 받지 않는 화폐 시스템을 연구해왔습니다. 비트코인은 그 연구의 결실이자, 금융 자본주의와 국가 통화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읽힙니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비트코인의 본질이 책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과거의 화폐가 '왕의 명령'이었다면, 비트코인은 '인간이 만든 규칙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권력의 신뢰'에서 '규칙의 신뢰'로의 전환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대 2100만 개라는 한정된 공급구조는 가치 변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이는 정부나 중앙은행이 화폐를 마구 찍어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대중의 자산 수탈을 근본적으로 막는 첫 번째 화폐 시스템을 뜻합니다.

본서의 또 다른 중요한 인사이트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화폐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일겁니다.
저자는 '브릭스(BRICS)'가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도전하기 위해 자체 결제 시스템과 디지털 통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현실을 상세히 조망합니다. 동시에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도 분석하고 있죠.
관련하여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저자가 보여주는 '미국의 이중 전략'이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암호화폐를 규제하면서도, 실제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의 지배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모습이 그것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준비금에 포함시키겠다는 최근의 움직임도,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달러 체제 붕괴에 대비한 장기 전략의 일부라는 저자의 분석이 상당히 예리했습니다.
저자는 비트코인을 '가격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가치 투자'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격 변동에 일희일비하며 매매하는 투자는 장기적으로 손실을 야기하지만, 비트코인이라는 자산의 철학적 가치와 기술적 우월성을 믿고 장기간 보유하는 접근은 분명 다르다 봅니다.
특별히 책이 의미있는 부분은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경제적 위치를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일겁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졌으면서도 여전히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종속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만약 달러 약세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한국의 화폐인 원화는 어떻게 될까요?
저자는 암호화폐 시대에서는 국가의 통화력도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으로 분석합니다. 대신 개별 시민들이 자신의 자산을 보호하는 방법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 보다 비트코인 같이 정부 권력으로 부터 독립적인 자산을 확보하는 것이죠. '금융 주권의 개인화'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책은 대략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듯 보입니다. 완전한 초보자들에게는 기술적 용어와 개념들이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책에서 제시하는 통계와 예측이 모두 저자의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현대 금융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해하려는 분들에게 '과거의 화폐 역사', '현재의 금융 위기' 그리고 '미래의 기술 진화'를 모두 담아내어,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